[문학예술]배달될 수 없는 가슴 시린 ‘편지’ ‘아내의 빈자리’

  • 입력 2002년 6월 27일 15시 44분


아내를 잃고 혼자 일곱 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아빠는 울 일도 많은 법이다. 어느 날 유치원으로부터 아이가 오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고 허겁지겁 조퇴해 아이를 찾아나선 적도 있고, 아빠를 위해 식지 말라고 이불 속에 묻어둔 라면에 눈물을 떨군 일도 있다. 이재종씨 부자 이야기는 이미 인터넷과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소개돼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다음은 그가 쓴 ‘아내의 빈자리’ 중 한 대목.

‘회사에서 퇴근하려고 하는데 전화가 왔다. 동네 우체국 직원이었는데 아이가 우체통에 주소도 안 쓴 장난편지를 100통이나 넣는 바람에 바쁜 연말 업무에 지장이 많다는 것이다. 서둘러 집으로 간 나는 아이를 불러놓고 다시는 들지 않으려던 매를 들었다. 아이는 이번에도 잘못했다는 소리만 했다. 난 아이를 한쪽 구석에 밀쳐놓고 우체국에 가서 편지 뭉치를 받아왔다. 그 뭉치를 아이 앞에 던지며 도대체 왜 이런 장난을 쳤느냐고 다그쳤다. 그러자 아이는 울먹이는 소리로 대답했다.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을 저미는 듯한 슬픔이 내 눈시울을 적셨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는 터라 나는 아이에게 애써 감추며 다시 물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느냐고. 그러자 아이는 우체통의 구멍이 높아서 키가 닿지 않았는데, 요즘 다시 서보니 우체통 입구에 손이 닿기에 여태까지 써왔던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했다. 난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 그 편지 중 하나가 나의 마음을 또 흔든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오늘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 날까봐 아빠한테는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날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아빠가 야단쳤는데 난 끝까지 얘기 안 했어. …그 편지를 읽고 나는 또 엉엉 울었다. 도대체 아내의 빈자리는 언제쯤 채워질까.”

‘아내의 빈자리’(오늘의 책 펴냄)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57편의 글 대부분이 먼저 세상을 떠난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이트 ‘하늘나라’(www.haneulnara.co.kr)에 올려진 글들 가운데 뽑았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혹은 형제에게, 친구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띄우지 않으면 슬픔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이 사이트를 이용한다. 남편 잃은 슬픔과 부모 잃은 슬픔에 경중을 가릴 수 있을까. 자식을 앞세운 슬픔의 무게는 또 얼마일까. ‘아내의 빈자리’는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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