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영찬/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

  • 입력 2002년 6월 3일 18시 24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6·13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정책공약을 통해 ‘지방자치권의 대폭 인정’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간판메뉴로 내세웠다.

양당의 이회창(李會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도 기회 있을 때마다 “지방화의 핵심은 분권화”라며 중앙과 지방 행정의 분리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중반전에 돌입한 지방선거전은 여전히 중앙정치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월드컵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보려는 의도에서인지 각 정당은 ‘중앙이 앞장서고, 지방은 뒤에서 따라가는’ 네거티브 공세에 그 어느 때보다 열을 올리고 있다.

물론 중앙당이 앞장서 정책대결을 유도한다면 시빗거리가 될 것이 없다. 문제는 상대 당 후보, 그것도 시 도지사뿐만 아니라 군수 후보들의 약점까지 중앙당이 시시콜콜 비방하는 폭로전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각 당의 중앙에는 “내 상대 후보를 공격해달라”는 지방선거 후보들의 요구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지방선거에 지방이 없다’는 자탄의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당이 상대방 대선 후보를 ‘막말’로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3일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나라 체면’을 앞세워 자제를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2등이 없는 선거에서 무슨 수단을 쓰든 이겨야만 하는 각 당의 다급한 사정이나 모든 정보와 관심이 중앙에 쏠려 있는 현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각 당이 표방하는 것처럼 지방의 일은 지방에 맡기는 분권화가 이루어지려면 선거과정에서도 중앙당이 개입해 과열 혼탁상을 빚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중앙당의 지원 덕분에 당선된 후보들에게 중앙의 ‘정치바람’에서 벗어나 진정한 ‘지역일꾼’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영찬기자 정치부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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