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라는 백제-고구려와 다른 민족? '신라의 역사'

  • 입력 2002년 5월 31일 17시 43분


저자 이종욱 서강대 교수. 사진=이종승기자
저자 이종욱 서강대 교수. 사진=이종승기자
신라의 역사 1·2/이종욱 지음/1권 384쪽,2권 392쪽 1만4900원 김영사

이종욱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학계에서 ‘이단아’로 불린다. 기존의 학설에 맞서 새로운 역사 지도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을 놓고 ‘한국 고대사를 새롭게 제시했다’는 찬사와 ‘황당한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악평이 공존한다.

하지만 그는 “국내 사학계가 기존의 학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비판할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역사 연구는 지난 100년간 정체돼있었다”며 “이제 ‘삼국사기’ 등 건국신화를 중요한 사료로 받아들여 한국 고대사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최근 펴낸‘신라의 역사’도 기존 역사서의 연구관행을 깨고 새로운 역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라는 백제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 아니다. 때문에 신라가 중국 당나라와 연합해 ‘동족국가를 멸망케했다’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고 지적한다. 신라가 고구려 백제를 병합한 것을 삼국통일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민족주의적 발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얘기.

이 책은 또 ‘국사’(2002) 고교 교과서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신라 초기 족장-소국-연맹왕국-중앙집권적 고대국가’라는 교과서의 신라 시대 변천사를 ‘촌장사회-소국-소국연맹-소국병합한 이사금 시대-마립간 시대-성골왕 시대’로 바꿔놓았고,‘통일 신라’ 대신 삼한 통합을 이뤘다는 의미에서 ‘대 신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삼국’이라는 용어도 당시 신라는 수많은 군웅 중 하나에 불과해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조선시대 사서에도 나와있지 않기 때문에 ‘부적절한 단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4세기 내물왕(재위 356∼402) 이전의 역사기록을 ‘신화’라는 이유로 불신하기 때문에 신라사에 공백이 생겼다. 하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사료로 인정할 경우 역사는 완전히 달라진다. 삼국사기가 완벽한 사료는 아니지만 기원전부터 4세기 중반 이전까지의 기록도 충분한 사료적 가치가 있다.”

그는 신라의 역사가 기원전 12세기부터 경순왕(935)때까지 2000년이라고 주장했다. 신라의 도읍이었던 경주의 지석묘 등 유물로 미루어 기원전 12세기부터 추장이 이끄는 촌락사회가 존재했고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혁거세 집단이 6촌을 통합, 사로국을 형성했다는 것. 그는 이어 “경주에 두었던 6부(지금의 구)에서 왕을 뽑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박 석 김씨의 왕족이 있었고 부의 장은 일개 구청장급이었다”고 덧붙였다.

이교수는 1999년 풍납토성이 기원전 2세기에 축조되기 시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그것이 3세기 이전에는 축조될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학계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 4월 문화재 연구소에서 발표한 풍납토성의 연대측정 결과는 기원전 2세기 초까지 올라간 것이 밝혀지면서 백제만이 아니라 신라의 건국신화와 초기 기록에서 출발한 그의 견해가 타당성을 인정받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대해 학계는 아직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경주 지석묘가 초기 청동기 시대 유물인 것은 사실이나 북한에 비해 규모가 작아 국가가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며 “삼국사기 초기 기록도 고구려 백제 신라 순이 아닌 신라 중심으로 재편돼있어 사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유전 소장은 고고학적 입장에서 진일보한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광복후 반세기가 넘었지만 한국 사학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이 교수가 기존의 학설에 반기를 든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청동기 시대의 경주 지석묘 문화도 대규모 집단이 있었다는 증거를 바탕으로 신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교수는 한국 고대사 연구에 30년 가까이를 매달렸다. 1974년 서강대 대학원에서 ‘남산 신성비를 통하여 본 신라의 지방통치체제’로 석사학위를, 1982년 이 대학원에서 ‘신라 국가형성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스승인 원로사학자 이기백선생은 자신의 주장과 상반된 논문이었음에도 새로운 학설을 제기한 제자의 논문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이 교수는 “모든 사료는 역사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며 ‘신라의 역사’ 역시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것이고 비판받을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만든 연구관행을 따르는 국사 교과서를 새롭게 쓰고 한국고대사의 새로운 판을 짜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장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신라의 역사에 대한 제대로된 통사가 없다. 고대사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역사를 재구성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민족사를 외치며 한국사 체계를 왜곡시켜온 현대 한국사학의 문제를 바로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요즘 각종 건국신화를 종합하고 있는 그는“고구려 백제의 역사, 화랑도와 관련한 책도 펴낼 예정”이라며 의욕을 보였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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