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김장권/정치도 축구처럼

  • 입력 2002년 5월 30일 18시 43분


축구 경기는 우리를 열광시킨다. 신기루 같은 사각의 골대 사이, 싱그러운 푸른 잔디에서 펼쳐지는 명승부의 장면들은 관중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마술이다. 흔히 현대를 스포츠 스크린 섹스의 ‘3S 시대’라 일컫지만 그 가운데서도 축구 경기가 차지하는 자리는 확고부동하다. 최근 한국대표팀과 잉글랜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그것은 확인되었고 오늘 펼쳐지는 월드컵 개막전에서도 그 열기가 다시 한번 확인될 것이다.

▼반칙 난무하는 정치판▼

아마 이러한 축구의 마력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원초적인 승부욕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단순히 승부욕만 자극한다고 해서 사람들을 열광시킬 수는 없다. 투견이나 투계처럼 거의 죽을 때까지 물어뜯고 싸우는 동물적 승부를 보면 재미에 앞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축구 경기는 그러한 피비린내 나는 무한투쟁이 아니라 이성적인 규칙에 기초한 게임이라는 데 더 깊은 묘미가 있다.

투쟁과 게임의 차이는 바로 그러한 규칙의 존재 여부다. 규칙은 게임의 생명이고 재미의 원천이다. 축구나 야구 게임의 규칙을 전혀 모른다면 무슨 재미로 경기를 보겠는가. 나는 미식축구의 규칙을 모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그리도 열광하는 슈퍼볼 경기를 한번도 본 적도, 보고 싶어한 적도 없었다.

또한 축구가 단체경기라는 점도 각별한 재미를 가져다 주는 요인이다. 11명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팀워크, 각 선수들의 다양한 개성과 매력, 그런 요소들이 어우러져 엮어내는 변화무쌍한 장면들의 조합, 이런 것들은 단조로운 개인경기에서는 결코 만끽할 수 없는 축구만의 강렬한 매력이다.

이런 축구의 재미는 대부분의 스포츠에서와 마찬가지로 맞서 싸우는 어느 한쪽 팀에 대한 응원을 통해 크게 증폭된다. 훌리건이나 붉은 악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편, 네 편이 없다면 누가 축구장엘 가겠으며, 가서도 무슨 재미로 축구 경기를 보고 앉아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축구 경기의 본질은 정치의 생리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정치의 세계는 기본적으로 승부의 세계이며, 법이니 규범이니 꽤 복잡한 규칙을 갖춘 일종의 게임이다. 또한 정치는 축구와 같이 단체경기이며 지지세력과 반대세력 간의 편가르기에 기초한 고도의 응원 시스템에 의해 작동된다. 특히 요즘은 각 지역 연고 축구팀들이 있는 것처럼 한국 정치도 지역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불행하게도 축구 경기에서와 같은 재미도 열광도 없이 썰렁하기만 하다. 아니, 보면 볼수록 짜증스럽고 때로는 섬뜩하기조차 하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정치에서 게임의 규칙은 너무나 변화무쌍(?)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가 분명한데 어떤 때는 골인으로 인정되고 어떤 때는 반칙으로 규정된다. 경고를 받고 퇴장당한 선수가 몇 분 후에 제멋대로 다시 운동장에 들어와 멋있는 골을 터뜨리곤 우렁찬 환호를 받기도 한다. 선수들이 미친 듯이 치고받고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때는 심판들도 그 싸움에 합세하곤 한다. 선수들이 각자의 개성적인 기량을 발휘하지 않고 재미없게도 감독이 시키는 대로만 뛰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내편 네편 없이 서로 난장판으로 얽혀 싸워 누가 누구 편인지 모를 때도 있다.

이러니 처음엔 어느 정도 기대를 갖고 바라보던 관중들도 인내심을 잃고 점차 관전의욕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 경기는 시끄럽기만 하고 재미도 없으며 응원하고 싶은 팀도 특별히 없으니 결국 운동장에서 발길을 돌리게 된다.

▼게임의 룰 따르는 선거를▼

축구가 발전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보다 관중의 관심과 사랑이다. 수많은 축구 영웅들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선수들은 열심히 뛴다.

정치라는 ‘국민 경기’가 발전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이 관중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뛸 때, 그림 같은 슛도 나오고 펠레 같은 위대한 선수도 탄생되는 법이다. 민주정치는 그렇게 발전되는 것이며 위대한 정치가도 그렇게 탄생되는 것이다.

온 국민의 환호 속에 월드컵 축제가 펼쳐지는 6월에는 한국 정치의 축제 또한 벌어질 것이다. 6·13 전국 동시 지방선거는 우리들의 살림살이를 맡아 일할 대표선수들이 한판승부를 벌이게 될 흥겨운 국민적 축제다. 경기로 치자면 결코 놓쳐서는 안될 큰 경기이다. 과연 얼마만큼의 관심 속에서 치러질 것이며, 얼마나 아름다운 승부들이 전개될 것인가.

김장권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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