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에이스 오브 에이스: 이대진

  • 입력 2002년 5월 28일 10시 55분


선동렬이 생각한 자신의 146승 기록을 깰만한 투수

고교 시절 6할1푼8리의 타율과 32개의 홈런

150km를 넘는 강속구와 낙차 ‘드랍’ 커브를 보여주던 투수

Ace of Ace....

위의 문장들을 보고 바로 생각나는 선수가 있다면 아마도 당신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야구 중독자든지 아니면 ‘에이스 오브 에이스’ 팬 클럽 회원이든지 말이다.

‘5월 복귀’를 목표로 하던 기아 타이거즈의 부동의 에이스 이대진이 결국 타자 전향을 선언했다. 얼마 전인 5월 16일 감독과 가진 면담에서 “어깨 통증이 완쾌되지 않아 더 이상 투수로 활약하기 힘들 것 같다”면서 “타자로 전향하겠다”고 밝혔다고 하는데 사실 그가 그동안 타이거즈를 위해 올렸던 성적을 생각한다면 이번 타자 전향은 그야말로 놀라운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어떤 투수였나?

1993년 입단직후부터 부상당하기 전인 98년 시즌까지 6년 평균 12승을 해냈고, 통산 방어율 3.01을 기록하면서 1058이닝동안 무려 936개의 삼진을 잡아냈고, 볼넷은 410개 밖에 주지않았던 그야말로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 150km를 넘나드는 묵직한 강속구와 흡사 하늘에서 떨어지는 정통커브로 상대타자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던 모습은 ‘Next 선동렬’이란 찬사를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받았었다. 타팀 팬들에게는 무등산 폭격기가 주던 두려움을 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의 그토록 뛰어난 재능을 하늘이 시기했는지 아니면 구단과 선수의 ‘성급한 판단’이 더 큰 실수를 범하게 됐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98년을 끝으로 이대진은 원래의 압도적인 모습을 잃어버린다

1998 시즌 이미 피로의 기미가 보였던 이대진은 결국 부상으로 99년 한 시즌을 쉬고 2000년 다시 타이거즈 마운드의 핵심으로 기대를 받으며 돌아온다. 어깨에 폭탄을 매단 채 말이다. 7개월간의 공백 기간 후 가진 첫번째 등판에서 이대진은 80%의 힘으로 던졌다고는 하나 시속 140km를 간신히 넘는 직구 스피드를 보였고, 경기 후에는 약간의 통증을 호소하게된다. 이쯤되면 좀 더 몸을 가다듬을 필요도 있었다. 이미 이대진은 몇 년에 걸쳐 유연하지 못한 투구폼으로 혹사를 해왔었고(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혹사라는 말이 아니라 신체적인 피로를 뜻하는 것이다.), 당시 타이거즈 프런트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수를 기용했다면 이대진이 고통을 호소할만한 몸으로 1군에 올리는 모험은 절대로 하지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본인이 괜찮다고 말했어도 말이다. 이대진의 경기는 계속된다.

그 해 이대진은 나름대로 고통과 싸우면서 투혼의 피칭을 해낸다. 특히 선발투수에서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하기로 결정한 것은 선동렬의 해외이적 후 클로저에 항상 문제점를 보여왔던 타이거즈의 코칭스탭 입장에서는 거절하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이며, 한국 프로야구의 특징인 ‘에이스의 마무리화’를 감안한다면 이것은 당연한 결정일 수도 있다. 여기다 당시 타이거즈 마무리 투수였던 오봉옥은 연일 승리를 날려버리던 시점. 시즌 내내 마무리로 뛰고 싶다는 이대진의 뜻은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자충수가 되버린다. 팀에게나…이대진 본인에게나…

보통 부상 경력이 있는 투수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불펜에 두지않는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선발투수보다 구원투수가 몸 관리를 하기 더 어렵다고 알고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구원 투수에게 필요한 조건인 연투능력이 이들 ‘컴백 투수’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매 시즌 마무리에 문제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팀 내 최고의 투수들인 문동환이나 염종석을 마무리 투수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하긴 이들도 억지로 구원 투수로 돌려졌다 실패했던 쓰라린 과거을 가지고 있다.) 이대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무리로 전환한 이후 초반 위력적인 투구를 보였던 이대진은 여름를 거치면서 훈련량 부족으로 인한 체력 소모와 어깨부상으로 인한 구위하락을 나타내며 9월이후 완전히 무너져내린다. 9월에만 방어율 5.93, 10월에는 방어율이 무려 6.43. 팀 역시 같은 기간동안 8승 13패를 기록하며, 한때 3위를 위협하던 타이거즈는 “이대진이 돌아오면 치고 올라갈 수 있다.”는 김응룡 감독의 말과 달리 5할 성적에 한참 모자라는 성적으로 고작 4위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오버페이스’한 이대진은 그 대가로 다시 한 번 마운드에서 사라져버린다. 타이거즈 팬들의 소망을 가슴에 안은 채...

그 후의 이야기는 앞에서도 언급했던 그리고 모두 알고있는 사실과 크게 다르지않다. 평소 타자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던 이대진이 타자 전향을 선언한 것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다만 앞으로 ‘제 2 의 이대진’이 나오지않으려면 구단이나 선수 본인이 좀 더 많은 좀 더 많은 주위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자신의 기호나 재능때문이 아니라 후천적인 부상에 의해서 하고싶은 포지션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만일 그 때의 이대진이 좀 더 몸을 추스렸다면,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변경했더라도 투구수를 적절히 조절해줬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 타이거즈 11번 선수의 놀랄만한 광속구를 TV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수, 코칭스탭 그리고 구단에서는 ‘재활선수’에 대한 좀 더 많은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대진이 타자로서도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보고있다. 이미 이호준의 예에서 봤듯 타이거즈의 코칭스탭은 좋은 타격 재능을 훌륭한 타자로 길러낼만한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홍세완, 김종국, 장성호 등의 타격 등이 매년 좋아지는 것 역시 이것과 무관하지않을 것이다. 다만 이대진의 나이(74년생)가 가장 큰 걸림돌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이대진이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감동스토리’를 보게될 수 있을 것이다.

월드컵의 열기가 가라앉고 맑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할 무렵 ‘등번호 11번’의 선수가 우측 배터 박스에 들어와서 리그 최고의 투수들에게 통쾌한 홈런을 뽑아내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에이스 오브 에이스에서 슬러거 오브 슬러거로서의 변신. 한 번 기대해보자.

주) 에이스 오브 에이스는 이대진선수의 팬 클럽 이름입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