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논설위원칼럼]김종석/정치개혁, 유권자 손에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57분


경제학에서는 기업을 생존과 성장을 위해 지속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변신하는 존재로 보고 있다. 이것은 모든 생물이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원리에 의해 환경에 지속적으로 적응해 진화하는 원리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한 국가에서 특징적으로 관찰되는 기업 행태나 구조는 좋든 나쁘든 그 나라 기업 환경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한 국가의 기업환경은 그 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와 정부정책이 형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의 논리로 보면 기업의 행태를 바꾸려면 기업인을 비난하고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도록 강요하는 것보다는 기업이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도록 기업환경을 바꾸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개혁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경제학자가 재벌개혁 과정에서 정부의 직접 개입과 강요에 의한 개혁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금품 공세에 놀아나지 말길▼

이런 기업개혁의 경제원리를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에 적용하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기업의 목표가 이윤증대와 기업의 생존이라면 정치인들의 목표는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와 정치생명의 지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올바른 국정을 펴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런 행동이 그들의 정치생명에 도움이 되는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질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 비난과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들이 분노를 자아내는 행위를 반복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 행동이 자기들에게 이득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라고 비전을 갖고 크고 올바른 정치를 해보겠다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정정당당한 정책 대결로 국민의 심판을 받아보겠다는 지도자가 왜 없겠는가.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도 우리나라 정치 풍토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정치권에 뛰어들었던 인사들 중에도 나름대로 올바른 뜻과 큰 이상을 펴보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매한 인격과 순수한 이상만으로 국민의 표를 얻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표를 얻는 일도 전문성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일종의 기술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표 얻는 능력과 국가경영 능력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비리 폭로나 상대방 흠집내기식의 정쟁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런 전략이 약효가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에서 약효란 물론 국민여론과 투표의 방향이 그런 전략에 의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약효가 있는 한 누군가는 그 약을 쓰고자 할 것이고 혼자 고고한 척하다가는 오물을 뒤집어쓰고 결국 정치판에서 낙오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돈이 많이 들어 정치인들의 이권개입과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돈 안 쓰는 정치를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정치판에 뛰어든 순진한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대부분 정치인 대접을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하고 도태되고 말았다.

오히려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유죄판결을 받아 퇴출됐던 정치인들이 얼마 있다가 사면 복권되어 정계로 복귀하면서 전보다 더 거물 행세를 하고 있다. 패거리를 짓고 이권과 자리 나눠주는 것을 정치력 친화력으로 미화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풍토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계를 주름잡고 있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정치 사회문화와 국민정서에 가장 잘 적응한 신토불이 토종 정치인들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낙후된 정치문화는 수준 낮은 정치인들 때문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정치인들밖에 살아남을 수 없는 토양 때문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제대로 뽑아 맑은 정치 이뤄야▼

그런 토양을 놓아둔 채 정치인들의 자질을 탓하는 것은 마치 잡초밖에 자랄 수 없는 땅에 잡초가 무성하다고 잡초를 나무라는 것과 같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정치개혁은 바로 잡초 같은 정치인들이 도태되고 유능하고 정직한 정치인들이 대성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토양은 정치인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유권자인 국민이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금품공세나 근거 없는 폭로에 놀아나는 국민이 있는 한,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을 용서하고 이해해주는 국민이 있는 한, 그리고 전과자에게 표를 찍어주는 국민이 있는 한, 유능하고 정직한 정치지망생들은 우리 정치판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국민을 속임수와 표몰이의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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