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왜 ´근친정권´ 인가

  • 입력 2002년 5월 22일 18시 41분


김대중 대통령 아들 홍걸씨가 구속되자 여야는 앞다퉈 ‘친인척 단속’을 다짐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친인척감시기구의 감독권을 야당에 맡기겠다는 희한한 내용까지 공언했다. 집권여당이 맡으면 권력 눈치를 보게돼 유야무야 되고 만다는 이유다. 하기야 지금도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 대통령 친인척을 관리한다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세 아들 비리연루 의혹 외에 처조카 가신 측근 그리고 부인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앞으로는 더 기발한 ‘제도적 장치’가 등장할지 모른다. ‘제도적 장치’에 따옴표를 씌운 이유는 효과가 의문스럽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친인척비리는 무슨 장치를 했다해서 막아지는 일이 아니다. 터지고 나면 문초한다지만 예방 효과는 좀 있을지 몰라도 크게 기대할 것은 못된다. 정작 처리 과정에서 복잡한 내부 갈등과 분란이 일어나 마무리도 지지부진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임기중에는 권력 주변에 얼씬도 않겠다는, 가까운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장막속 부도덕한 권력▼

홍걸씨 구속 장면을 보면서 처세술에 능란한 사람한테 말려들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홍걸씨는 종범이 아니라 정범으로 ‘근친정권’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던 것이다. ‘근친정권’이라 한 이유는 이 정권이 친인척과 가신끼리만 얽혀 돌아가는 진화론 초기의 ‘미분화’단계 의식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구속된 권노갑 민주당 전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가신, 측근들을 홍걸씨는 아저씨라고 불렀다. 역시 수감된 이수동 전 아태재단 사임이사는 어렸을 때 김 대통령과 앞뒷집에 살았고 중학시절엔 김 대통령 집에 기숙하기도 했다. 아저씨 이상의 관계다. 이들은 이런 끈끈한 인연을 축으로 전례없는 ‘근친정권’을 새로 만든 것이다. 바로 그 사람들이 정권의 실세를 자임했고 또 그렇게 행동했다. 그들이 컴컴한 장막을 쳐주었을 때 막말로 홍걸씨가 무엇이 두려웠겠는가. 국가정보원 2인자의 사전경고쯤은 단칼에 내쳐버릴 정도였으니 더 무슨 눈치 볼 일 있었겠는가. ‘근친’이란 어감에서 연상되는 음습하고 부도덕한 느낌처럼 결국 그것은 일찍이 볼 수 없던 엄청난 규모의 권력부패, 정권비리로 나타났다. 더욱이 요즘 둘째아들 홍업씨 관련 수사과정에서 새롭게 불거진 청와대의 강압수사 발언유도 의혹이란 또 무엇인가. 죄질에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 이 정권은 더욱 천박해졌다.

DJ정권은 그동안 별 수치심 없이 ‘근친정권 명함’을 돌리고 다녔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로 개혁과 민주화를 독점하려는 ‘구호전단’도 뿌렸다. 외부의 신선한 피가 차단된 ‘근친정권’은 생래적으로 그 기능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 퇴임 중앙인사위원장도 혈연과 지연이 얽혀 만든 ‘혈전’을 지적했고 그로 인한 ‘근친정권’의 기능 장애를 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만들어 낸 제품이 더욱 조악하고 기형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대로 소화도 못하면서 개혁과 민주화란 명분을 독식하려 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시절 집권세력은 애국심을 독점했다. 군복의 획일적 애국심으로 눈에 거슬리는 것은 무조건 덮어버렸다. 김영삼 전 정권도 개혁과 민주화를 내세우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유별나게 이 정권 들어 명분을 포식하려 든 이유는 무엇인가. 야당으로서 정권 교체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빠져 눈앞 모든 것을 전리품으로 보았다. 그리고는 기세 등등한 자만심에서 ‘우리 식 개혁과 민주화’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사실 개혁과 민주화 명분만큼 더 좋은 포장재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성공한 개혁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과연 국정 어느 구석에 있는가. 교육인가, 의약분업인가, 공기업인가. 게다가 자기만의 민주화를 강조하다가 남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었다. 경찰 7명이 숨진 동의대학생시위와 전교조 활동의 민주화운동 결정이 그 실례다. 민주화의 포식후유증이다. 쉬쉬하며 추진해온 북한산 민주공원도 같은 경우다.

▼개혁 외치더니 부패인가▼

따져 보자. 권력부패, 정권비리보다 더한 반개혁, 반민주가 어디 있는가. 이 정권은 개혁, 민주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

권력 주변에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부패고리에 걸려 구속, 수사를 받았던 정권이 언제 또 있었는가. 이젠 무슨 무슨 게이트란 말에 신물나니 그만 하자는 독자들의 소리도 듣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추적한다. 쉬었다가 다시 이런 지긋지긋한 굿판을 되풀이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욱이 아직도 이 정권 안에는 자기들만 개혁, 민주화의 주역이고 남들은 반개혁, 반민주로 몰아붙이는 정신나간 세력이 있으니 말이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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