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골프]최화경/최경주의 웃음

  • 입력 2002년 5월 6일 18시 34분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다. 웬만한 골프채 한 세트 장만하려면 몇 백만원이 간단히 날아간다. 어디 그뿐인가. ‘어떤 채가 거리가 더 나간다’라고 소문이 나면 빚을 내서라도 사는 게 골퍼들의 속성이다. 잘 치는 사람이면 또 모른다. 처음 시작하는 초보들까지 최고만 찾는다. 옷도, 모자도 마찬가지다. 지하철 타던 사람이 골프를 시작하면 승용차를 사지 못해 안달이다. 이런 마당에 경운기를 타고 다니며 골프를 배웠다면 곧이 들을 사람이 있을까.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바로 어제 PGA대회에서 우승한 최경주 얘기다.

▷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역도선수로 3년을 지내다 처음 골프채를 잡은 게 완도수산고 1년 때인 1986년이다. 통학길에 멀리서 본 골프연습장을 꿩 사육장으로 알았으니 골프와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다. 하긴 남의 땅 부쳐먹고 사는 집안 형편에 골프가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사람일은 참으로 모를 일이다. 강제이다시피 했던 체육교사의 권유로 낯선 골프채를 처음 잡았고, 아버지 경운기를 타고 다니던 연습장에서 우연히 평생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유남종 프로를 만났으니 말이다. 또 있다. 지금 ‘벙커샷의 달인’ 소리를 듣는 게 고향 바닷가 모래밭에서 연습한 덕이었다니 최경주와 완도는 궁합이 맞았던가 보다.

▷PGA와 우리의 골프 수준은 하늘과 땅 차이다. 국내에선 소문난 최경주의 장타도 타이거 우즈 등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고 한다. 이쯤 되면 그가 그동안 컷오프에서 무수히 탈락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한국에서 한해 7억∼8억원을 거뜬히 벌며 VIP 대접을 받던 터였기에 좌절의 연속인 미국생활은 견디기 어려웠을 게다. 미국에 간 지 얼마 안 됐을 때 연습장에서 만난 어니 엘스에게 인사를 했는데 이 대스타가 모른 체했나 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그냥 갔을 텐데 최경주는 엘스의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왜 인사를 받지 않느냐”고 따져 끝내 사과를 받았다고 한다. 그의 오기와 두둑한 배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그를 ‘촌놈 골퍼’라고 불렀다. 완도 구석에서 골프를 배운 데다, PGA의 내로라 하는 스타들 가운데 늘 굳은 표정으로 끼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이젠 예전의 최경주가 아니다. 당당한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린 만큼 달라져야 한다. 타이거 우즈든, 어니 엘스든 주눅들 필요가 없다. 우선 환하게 웃는 모습부터 보고 싶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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