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가다]<5>자유로운 의사소통

  • 입력 2002년 5월 5일 17시 47분


“일본말 못해도 음식 주문 지장 없어요”

고베(神戶)시 중심가 산노미야(三宮)역 주변의 면발이 좋기로 소문난 한 일본 우동 전문점. 이 음식점에 들어선 외국인은 일본어를 몰라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말을 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여 가지의 우동을 파는 이 음식점에서 외국인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메뉴판에 있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로 제작된 메뉴판에는 음식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손님이 음식점에서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사진설명‘일본어를 못해도 통하는 사회’. 월드컵 기간 중 일본이 추구하는 언어 서비스 정신이다. 도쿄역 관광안내소에서 한 외국인이 안내를 받고 있다.도쿄〓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예컨대 이 음식점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알고 싶다면 메뉴판에서 해당 질문이 적혀있는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일본인 종업원도 역시 손가락으로 해당 메뉴를 짚어준다.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손가락질이 두어번 오가다보면 주문 끝.

중국 관광객 우메이청(吳美誠·36·상하이 거주)은 “아무말 없이 종업원과 메뉴판만 주고받는 것이 약간 우습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정확히 알고 주문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이 메뉴판은 고베시 산업진흥국이 제작해 시내 주요 음식점 5000여곳에 시범적으로 배포한 것으로 고베시는 일단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판단, 시 전체 음식점에 메뉴판을 배포할 예정이다.

시즈오카(靜岡)현 후쿠로이(袋井)시도 비슷한 발상을 도입했다. 택시와 레스토랑에서 쓸 수 있도록 필요한 말을 적은 팜플렛 ‘레스토랑 가이드’와 ‘택시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한 것.

‘손가락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미의 그림이 있는 이 팜플랫은 접으면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다.

후쿠로이시 국민체육대회 실행위 사무국 마에다 후미오(前田富美雄·59)이사는 “시민들이 당장 외국어를 배우기는 무리여서 외국인도 쓰기 쉽고 시민들도 제대로 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팜플렛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온천으로 유명한 시즈오카(靜岡)현 아타미(熱海)시는 외국인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3자 통화 상담 시스템’을 도입했다. 3자 통화 상담은 외국인과 대화가 불가능하면 여관 종업원이 전문 통역원과 전화로 연결해 이들 3자가 서로 도와 의사 소통을 하는 것. 호텔 종업원들은 기본적인 영어를 구사할 수 있지만 일본의 전통 여관(료칸·旅館) 종업원들은 외국어 실력이 딸린다는 현실을 고려한 묘책이다.

요코하마(橫浜)시는 월드컵 기간 동안 ‘웰컴 캠페인’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 시민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이 캠페인은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외국어가 가능한 일본인들에게 해당 국가의 국기와 언어가 표시된 뱃지를 나눠주고 외출할 때마다 가슴에 달도록 한다는 것. 길에서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이 이 뱃지를 보고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요코하마시 월드컵 추진실 관계자는 “아직 캠페인에 참여할 시민들을 모집 중이지만 하루에도 문의전화가 10통 이상씩 걸려오는 등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에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호텔들도 외국 손님 맞이에 비상이다. 오사카(大阪)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뉴오타니 호텔은 외국어 강사를 초빙해 스페인어 프랑스어, 중국어, 한국어 등 1년짜리 자체 어학강좌를 시작했다. 비(非)영어권 손님들에게도 질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 호텔의 마케팅 담당 과장 타카기(高木)는 “종업원들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제2외국어 구사 능력이 필요해졌다”면서 “언어 연수는 월드컵 이후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외국어 강좌를 개설한 지자체도 있다. 월드컵 기간 동안 10만명에 가까운 외국인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오사카시는 ‘환영합니다 오사카’라는 시민 대상 외국어 강좌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일상회화와 상인을 대상으로 한 실전회화가 초급과 중급반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오사카시는 이외에도 경기장 주변과 외국인들이 많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18개 지역에 오프라인 종합안내소를 설치했다. 이와함께 6개 국어 전화 안내 서비스인 ‘종합 콜센터’를 가동해 교통 숙박 관광 정보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관련기사▼

- [Let's go Japan]축구왕국 꿈꾸는 시즈오카현


▼고베거주 외국인 친선단체 KRAC “희귀語도 척척”▼

‘고베 레가타 애슬레틱 클럽(Kobe Regatta and Athletic Club·KRAC).’

월드컵 경기개최지인 고베(神戶)시에 사는 외국인들의 친선 단체다. KRAC는 1870년 일본 개항 직후 조직돼 축구 야구 럭비 등 근대 서양스포츠의 일본 수입창구 역할을 해왔다.

KRAC가 이번에는 월드컵 통역 서비스로 일본을 돕는다. KRAC는 회원들이 일본에 정착하면서 겪은 경험을 살려 외국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애로를 그들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KRAC는 전 세계 28개국 220명이 회원이어서 아랍어 등 희귀어도 지원 가능하다. KRAC는 ‘일본 병원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없다’는 등 일본 사회의 독특한 점과 ‘외국어가 가능한 의사’ ‘외국인의 입맛에 맞으면서도 값이 싼 음식점 소개’ 등 의료 및 먹을거리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KRAC는 또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과 회원을 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연결하기로 했다. KRAC 지배인 오우치 다쓰야(大內達也·41)는 “관광안내소나 자원봉사자는 주로 일본 사람의 입장에서 정보를 주지만 우리는 외국 관광객들이 필요로 하는 실질적인 정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하준우기자 hawoo@donga.com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일본 축구협회 등록 팀 현황 (2002년 4월 현재)
일반부8058팀
18세미만4322팀
15세미만6468팀
12세미만8118팀
시니어(40세이상)241팀
여자부967팀
총계2만8184팀

일본 축구협회 등록 선수 현황
일반부17만8355명
18세미만15만1809명
15세미만19만8369명
12세미만23만4001명
시니어(40세이상)6459명
여자부1만9132명
총계78만8125명

자치단체별 등록 선수 순위 (총 47개 자치단체 중)
1도쿄(東京)도(都)6만3038명
2사이타마(埼玉)현(懸)4만7712명
3호카이(北海)도(道)4만6278명
4시즈오카(靜岡)현4만3837명
5효고(兵庫)현3만9804명
6지바(千葉)현3만3897명
7가나가와(神奈川)현3만3036명
8아이치(愛知)현3만1648명
9오사카(大阪)부(府)2만9889명
10후쿠오카(福岡)현2만246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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