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태극전사]<4>윤정환…‘플레이메이커 갈증’에 단비

  •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31분


2002년 3월20일 스페인 카르타헤나 카르타노바 스타디움. 따뜻한 봄 햇살 아래 느긋한 기분으로 ‘제3국’인 한국과 핀란드의 친선경기를 지켜보던 스페인 축구 팬들은 후반 중반 교체 멤버로 들어간 자그마한 체구의 한국 선수가 보여준 패스에 탄성을 올렸다.

교체 3분 만에 하프라인 부근에서 공을 건네받은 그는 힐끗 앞쪽을 쳐다보고는 주저 없이 패스를 찔러 넣었다. 공은 정확히 스트라이커 앞과 골 마우스 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비록 골과는 연결되지 못했지만, 이 패스는 이전까지 한국팀이 보였던 공격 형태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꾀돌이 미드필더’ 윤정환(29·세레소 오사카)의 대표팀 복귀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전까지 마땅한 ‘플레이메이커’를 찾지 못해 고심하던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도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23명의 월드컵 엔트리에 윤정환만큼 극적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도 없다. 윤정환은 지난해 6월 이후 9개월 가까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탁월한 패스에도 불구하고 ‘히딩크 체제’가 요구하는 강한 체력과 수비 가담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 때문. 이런 이유로 윤정환에게는 ‘불운한 천재’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96년 비쇼베츠 감독이 이끄는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아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대표팀에서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오래가지 못했다. 부상이 겹친 데다 적극적인 수비와 몸싸움을 좋아하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도 대표팀 감독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그래도 윤정환은 자신을 알아보는 지도자를 만나면 빛을 발했다. 부천 SK 시절인 96년 자신이 출전한 14경기에서 무패 기록을 이어갔을 정도. 당시 부천의 지휘봉을 잡았던 니폼니시 감독은 “윤정환은 장점을 살려줘야 하는 선수다. 단점을 보완하라고 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며 윤정환의 부족한 수비 능력을 감싸주기도 했다.

대표팀은 올해 초 미주 전지훈련에서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를 노출하며 졸전을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축구팬과 축구인들 사이에서 윤정환 발탁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히딩크 감독은 ‘테스트’라는 명목으로 윤정환을 받아들였지만, 윤정환이 대표팀 훈련에 들어오기 직전 “미드필더진은 이미 엔트리 구상이 끝났다”고 밝혀 그가 끼어들 여지가 많지 않음을 내비쳤다. 게다가 윤정환은 J리그 경기로 부상까지 입어 ‘악재’가 겹쳤던 상태.

하지만 윤정환은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핀란드전과 터키전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월드컵행 막차를 타는 데 성공한 것. 윤정환은 이제 세계를 상대로 특유의 ‘환상 패스’를 선보일 ‘다음 기회’를 노리고 있다.

윤정환은…

△생년월일〓1973년 2월16일 △출생지〓광주 △체격〓1m73, 63㎏ △소속팀〓부천 SK-세레소 오사카 △A매치 경력〓36경기 2득점 △주요 경력〓91년 청소년대표, 93년 동아시아대표,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표, 98년 월드컵예선 대표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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