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수렁서 건진 아주리군단 영웅 파울로 로시

  • 입력 2002년 4월 29일 17시 21분


월드컵에서 취재 기자단의 투표로 최우수선수(MVP)가 선정되기 시작한 것은 1982년 스페인 대회부터다. 이 대회에서 사상 첫 MVP로 뽑힌 선수가 이탈리아의 파울로 로시였다. 6골로 득점왕까지 차지한 로시는 이 대회를 통해 ‘오명’을 벗고 ‘영예’를 얻었다. 스페인월드컵은 로시에게 주어진 생애 최고의 기회였으며, 로시는 그 기회를 움켜잡은 행운아였다. 시상식에 오른 로시는 월드컵 트로피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영광의 순간을 만끽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가장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물론 우승팀 아르헨티나의 스트라이커 마리오 켐페스였다. 켐페스는 6골을 넣어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그러나 켐페스가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 한 것은 아니었다.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3골을 기록한 이탈리아의 신예 스트라이커를 주목했다. 21세의 로시는 이렇게 혜성처럼 월드컵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2년 뒤 로시는 다시 한번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뉴스의 초점이 된 것은 골과는 상관 없는 것이었다. 이탈리아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축구 도박에 로시가 연루된 때문이었다. 3년간의 출장 정지. 한창 전성기에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은 선수에게 곧 사형선고를 의미했다. 스물 셋의 로시는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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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년 뒤 로시는 기회를 잡았다. 이탈리아축구협회는 로시의 출장정지 기간을 2년으로 줄여 ‘사면령’을 내렸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빗장수비’의 이탈리아에는 수비에 걸맞는 공격수가 없었던 것. 이탈리아가 스페인월드컵에서 브라질 서독 아르헨티나 등과 맞서기 위해서는 로시가 필요했다.

당시 세계 축구계가 예상한 스페인월드컵의 우승 후보 1순위는 단연 지코, 소크라테스, 팔카우 등이 포진한 브라질. 루메니게의 서독이나 플라티니의 프랑스, 켐페스와 신예 마라도나가 호흡을 맞춘 아르헨티나도 이에 못지않았다. 다만 누구도 이탈리아를 우승 후보에 넣지 않았을 뿐. 허나 그것은 로시의 복귀를 계산에 넣지 않은 탓이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그림같은 다이빙 헤딩 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린 로시(왼쪽). 골이 들어가는 순간 서독의 골키퍼 슈마허가 골문쪽을 주시하고 있다.게티이미지본사특약

그라운드로 돌아온 로시가 전성기의 기량을 발휘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본선 1차리그 3경기에서 골을 뽑아내지 못했다. 2차리그에 턱걸이로 오른 이탈리아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예상을 뒤엎는 승리를 거둔다. 2-1로 승리한 이 경기에서 로시는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몸이 풀린 로시는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드디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4강 진출을 놓고 벌인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로시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브라질을 3-2로 눌렀다. 로시는 브라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로시의 득점포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폴란드와의 준결승전에서 2골.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다시 1골.

이탈리아에 사상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선사한 로시는 ‘이단아’에서 ‘아주리군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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