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진필중 내년에는 어느 곳에…

  • 입력 2002년 4월 11일 11시 56분


한국시리즈 최종 7차전이 열리고 있던 2001년 10월 28일의 잠실구장, 팽팽한 접전도 그 종막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간이다. 한 점 차로 리드 당하고 있는 라이온즈의 마지막 공격, 2사에 주자는 1루. 타석에 들어서야 할 이승엽은 덕아웃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조명탑의 불은 꺼져 있고, 마운드에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진필중이 홍성흔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필중의 야구인생 중 가장 극적인 순간 중 첫 손에 꼽힐 만한 순간이었으리라. 어느 투수가 시리즈의 최종전, 1점의 리드를 얻은 최종 이닝의 긴장을 느긋하게 '즐길'수 있겠냐마는... 진필중에겐 팀의 우승 이외에도 그의 신경을 자극할만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는 상황이었다. '팀 우승과 250만 달러의 이적금'. 페넌트 레이스 종료를 앞두고 구단 고위층이 진필중의 메이저리그 진출에 대해 내건 전제조건이다. 객관적으로 그다지 현실성 있어 보이지 않았던 베어스의 우승까지는 이제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이었다. 경기가 재개되고, 이승엽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한 방에 양 팀의 운명, 진필중의 운명이 엇갈릴 순간이다. 타석에 선 마해영은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듯 '붕붕 스윙'으로 일관했고, 수 년간 마무리로 뛰며 승부의 갈림길을 넘어온 진필중의 구위와 로케이션은 '최상'의 것에 가까웠다. 벅찬 감격 속에 동료들과 우승 세레모니를 벌이던 진필중의 마음은 이미 태평양을 건너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선구자'박찬호를 통해 MLB가 우리 팬들의 정서에 친숙한 것으로 자리 잡은 요즈음, 해외진출을 도모하는 간판급 선수들의 동정은 기사거리가 넉넉지 않은 오프시즌 동안 스포츠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마련이다. 2001시즌을 끝으로 해외진출 자격을 얻은 진필중의 미국 무대진출 가능성에 대한 대체적인 전망은 '구단이 이적료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가능할 것이라는 쪽이었다. 분명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였고, 대부분 트리플 A 출신인 용병투수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기량을 갖추었다. 다양한 구질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적어도 선동열의 일본 진출 이후 그만큼 우타자의 아웃코스 존에 강력하게, 또 정교하게 볼을 꽂을 수 있는 우완 정통파 투수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절정의 기량을 보인 99시즌 만큼의 기량을 보이진 못했지만, 2001시즌 후반부에 접어들며 구위의 회복을 보여주었고, 포스트시즌에선 팀의 승리를 굳건하게 지켜주었다. 그에 1년 앞서 일본으로 진출한, 구대성의 경우에도 막판까지 메이저리그 구단의 '실제적인' 영입 의사 표명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진필중의 진출도 무망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졌다. 소속구단인 두산은 주전멤버의 이적을 통해 운영자금을 충당하는 몇 차례의 선례에서 합리적이고 적정한 '거래'를 해왔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시리즈가 끝난 후, 두산은 진필중의 이적료로 5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했다. 시애틀은 이치로를 영입하기 위해 오릭스 구단에 1,3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다저스가 이시이를 데려오며 야쿠르트 구단에 지불한 금액은 1,125만 달러였다.

윈터리그 동안 어떤 구단도 두산 베어스 구단에 실체적인 영입의사를 표하기는커녕, 신분조회 조차 요청하지 않았다. 2001년 6월 9일 개정된 한 - 미 선수 협정은 FA자격 미취득 선수들의 이적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규정짓는다. 구단간의 어떠한 사전접촉도 규약 상으로는 금지되어 있다. 'MLB 구단의 신분조회 - 은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영입 의사 타진 - 포스팅 시스템 공시'등의 절차를 통해 충분히 제 값을 받길 기대했을 구단의 초조함은 커졌으리라. 물론 '필생의 꿈'이 무산될 형편에 처한 진필중의 초조함은 말 할 나위도 없었으리라. 해를 넘겨 다저스의 신분조회 요청으로, 물 건너 간 듯한 진필중의 미국 진출은 다시 추진력을 얻는다. 다저스, 볼티모어 구단의 스프링캠프에 직접 가서 테스트를 받는 방안이 모색되었으나.. MLB사무국이'사전 접촉'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무산된다. 결국 두산은 2월 22일 포스팅 시스템을 공시하기에 이른다. MLB 사무국은 입찰 마감일인 27일 아침, 한국야구 위원회에 "No major league club submitted bid' 라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진필중은 포스팅 시스템 실행 이후 MLB 30개 구단 중 어느 팀으로부터도 입찰을 받지 못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단순한 '진출'이 아닌 미국무대에서의 진필중의 '성공'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거의'가져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도 입찰 결과는 다소 의외의 것이었다. 구단이 제시한 '과도한'트레이드 머니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다는 진필중의 불만도'입찰구단 全無'라는 결과 앞에선 날을 세울 수가 없다. 분명 두산 구단은 200만 달러 선이면 보내줄수 있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이치로의 1,300만 달러, 이시이의 1,125만 달러와 그의 몸값이 비교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라는 위상을 가진 팀의 에이스를 100만 달러에라도 내놓겠다고 공표 하는 일은 두산이 아닌 어느 구단의 프런트라도 선뜻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진필중이 그의 진출이 무산된 후, 몇 주 동안 인터넷의 스포츠 게시판들을 들여다보지 않았기를 바래는 맘이다. 겨우내 'XXX선수는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을까요? 류의 설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마우스를 클릭 하던 팬들이, 진필중의 '탐욕'과 '주제파악 못함'을 이유로 쏟아낸 '격문'들을 말이다.

'舌禍'의 발단은 올 시즌의 전망과 각오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2억 3천만원 짜리 평범한 투수가 무슨 특별한... 이라고 언급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필자는 올해로 8년차가 되는 진필중의 연봉이 2억 3천이라는 데에 별달리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구단의 연봉산정 고과는 팬들의 주관적인 잣대 보단 훨씬 공정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베어스 내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타 구단 선수들과 비교해서 진필중이 자신의 연봉에 대해 불만스럽게 '여길만도 하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그와 같은 해에 데뷔하였고, 자주 비교되곤 하는 임창용의 3억원, 6시즌을 국내에서 뛴 이종범의 4억 3천 만원, 정민철의 4억원, 97년에 데뷔한 이병규의 2억원에 비교해서 자신의 연봉을 '평범한' 수준의 것이라고 생각할 권리 정도는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젊을 때 바짝 몸 굴려서 평생 밥벌이를 해야 하는 운동 선수의 화폐가치가 장기간 계속되는 경제불황을 체감하고 있는 '평민'의 화폐가치의 체감과는 괴리를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정도의 구설은 '스타'급 운동선수가 겪을지도 모를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작 진필중의 기운을 빼놓은 것은 그의 '실패'를 바라보는 팬들의 차가운 시선일지도 모른다. 곧 한국무대로 복귀하게 될 이상훈이 97시즌을 마치고 한국을 떠날 때의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보스턴이 제시한 70만 달러의 배팅을 트윈스 구단이 거부하자 현해탄을 건너간 그의 4년여에 걸친 방황을 말이다.

98년 5월 주니치에 임대될 당시의 그는 29세의 나이였다. 사실 이미 당시의 이상훈은 리그를 제압하는 슈퍼 에이스로서의 모습은 이미 잃은 상태였다. 그가 '최후의 선발 20승 투수'로 야구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 95시즌이후, 그의 야구 인생은 이미 정점을 넘어섰다.

허리부상 이후 그의 왼팔은 이전처럼 높은 궤적을 그리는 경쾌한 스윙을 보이지 못했고, 혈행 장애 증세를 앓던 그의 손가락은 경기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차임벨이 울리기까지 상대 라인업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이미 잃은 상황이기도 했다. 당시에도 많은 이들은 '진출은 몰라도 성공은 어렵다'고들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한국 무대에서 정상에 올랐고, 그가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을 이루었다. 더 큰 무대에서의 성공, 가장 높은 곳으로의 비상, 이상훈이 찾아서 떠난 것들은 아마 그런 것들이었으리라.

그런 그가 돌아온다. 아무도 그가 그 꿈을 이루고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분명히 실패하고 돌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쏟아지는 것은 오랜 세월 그를 기다려온 팬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이다. 현재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한계와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4년간의 '무모한'도전을 실패로 끝맺고 돌아온 32살의 한 투수에게 돌아온 것은 분명 또 다른'영광'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지난 4년 간 선발로 출장한 적이 없는 이상훈의 보직은 아마도 마무리 투수 일 것이다. 아무리 팀 승리를 최우선으로 두는 김성근 감독이라 할지라도, '이.상.훈'에게 셋업맨의 보직을 주진 않을 것이다. 팬들은 예기치 않게 이상훈과 진필중을 마무리로 내세운 두 라이벌 구단의 치열한 대결을 감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미국 진출이 좌절된 진필중이 '심리적 공황'상태에서 시즌을 맞을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트윈스와 베어스의 대결이 펼쳐지는 잠실벌, 박빙의 대결로 치닫는 경기 후반, 아마 트윈스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 속에 이상훈이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불펜에서 몸을 풀던 진필중이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하는 것은 필자만의 천박한 상상력은 아닐 것이다.

올 시즌이 끝난 후, 혹은 FA자격을 취득한 후 진필중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국내에 남아서 누구도 넘보지 못할 'FA대박'을 노릴지, 아니면 가장 현실적인 일본행을 택할지.. 아니면 미국으로 건너가서 마이너리그에서 불확실한 가능성과 미래에 선수생활의 후반을 송두리째 걸지..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달린 문제이다. 진필중 스스로 '필생의 목표'라고 밝혔듯 그가 진정 더 큰 무대로의 비상을 원한다면, 비록 그리 크지 못한 가능성일지라도 그의 야구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필자의 바램이다. 어떠한 이상과 목표에의 도전은, 그것이 성공으로 귀결되어야만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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