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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0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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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여학생들에게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매우 총명하고 당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있다면 한국의 미래는 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학생들에게 라틴어인 ‘carpe diem(seize the day)’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하루를 내 것으로 만들어 정복하란 뜻이죠.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될 때까지 또는 자신이 꿈꾸는 목표를 성취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한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즐겨라, 그리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서 행동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어느 나라나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사회 진출의 걸림돌입니다만 한국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여권 신장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모든 혁명은 바로 집에서,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역할이 중요하죠. 딸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주고 아들과 똑같이 교육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동등한 역할분담을 통해 자녀들이 남녀평등을 자연스레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부모의 역할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죠. 내가 바쁜 사회활동으로 딸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면서도 죄책감 없이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친정어머니 덕입니다. 엄마가 자기랑 자주 놀아주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딸에게 내 어머니는 ‘네 엄마는 너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많은 어린이들을 위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얼마나 훌륭한 엄마냐’고 말해주시곤 했죠. 이처럼 가족 구성원들의 도움과 의식 변화가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핀란드는 여성의 권익이 가장 신장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과거 소련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핀란드는 남성이 전선에 나가 있는 동안 후방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의 몫까지 맡아 해냈고 이것이 남녀평등 의식 고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나 핀란드를 여성 천국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정보통신분야에서 여성 전문인력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성기업인들의 수는 아직도 적고 진입장벽도 높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을 시정하기 위해 핀란드 산업통산부에서는 여성들만을 위한 융자대출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고 여성 법을 따로 제정해 고용과정이나 직장에서 차별을 받을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출산 전후 1년에 가까운 출산휴가를 낼 수 있습니다. 만 3세 이하 아동의 부모는 재고용이 보장된 무급 휴직을 할 수 있습니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으면서 남성 중심사회에서 훌륭한 리더로 인정받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대통령을 꿈꾸는 한 여대생이 물어봐 달라고 부탁한 질문입니다만….
“소수의 입장에 선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진정한 리더가 될 수는 없죠. 여성들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평생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남녀 불문하고 가급적 많이 차근차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좌절하거나 자신의 한계를 느낀 적이 있나요.
“어머니는 정규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지만 여성 권익에 관심이 컸고 직장에서 노조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셨어요. 아버지는 이런 어머니를 잘 이해해 주었습니다. 살면서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그러한 가족과 사랑하는 배우자, 친구들이 많은 힘이 돼 주었지요. 실패를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은 가족 친구 동료들로부터 힘을 얻는 것, 그리고 때로 세상을 유머감각을 갖고 바라보는 여유입니다. 유머야말로 평안을 주는 만병통치약이니까요.”(웃음)
얘기가 그의 남편과 결혼에 이르자 문득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는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답은 단순 명료했다. “당신의 마음 가까이에 다가와 있는 사람(Someone close to your heart)”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처음으로 수줍게 웃었다.
그의 남편은 국회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가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그 여대생에게 꼭 말해주세요. 할 수 있다고, 도전해 보라고요.”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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