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재성/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 입력 2002년 3월 11일 18시 35분


지난해 초 건설교통부의 주택정책 실무를 맡고 있던 한 공무원이 말했다.

“올 연말까지 부동산 경기를 확실히 띄우겠습니다. 믿어주세요.”

당시는 각종 민관연구소에서 ‘집값이 사상 처음으로 떨어지거나 1∼2% 상승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던 때였다. 국내외 경기 전망이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 담당자는 “정부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부양책을 만들면 된다”면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후 그는 그 자리에서 떠났다. 하지만 정책은 그의 말대로 진행됐다. 정부는 주택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10여개의 크고 작은 정책을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과열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언론과 여론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부양정책은 계속됐다. 당시 정부의 명분은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동산 경기를 부양해 건설 경기를 북돋아야 한다는 것.

이 정책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왔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면서 집값은 90년대 이후 최고치인 전국 12.8%, 서울 14.1%가 각각 올랐다.

그리고 해가 바뀌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중순 건교부의 한 고위관리는 “집값 상승세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올 들어 연초부터 정부는 지난해와는 반대로 집값을 잡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놓기에 부산하다. 올해 발표된 집값 안정 대책만 벌써 7개에 달한다.

그중에는 분양권 전매제한 조치를 1년 전에 분양권을 산 사람에게까지 적용하겠다는 소급입법도 포함돼 있다.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래도 집값이 잡히지 않으면 분양권 전매를 완전히 금지하겠다”거나 “분양가도 다시 규제하겠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멋대로 부동산경기를 띄우겠다거나 반대로 우격다짐으로 집값을 낮추겠다고 말하는 ‘시장경제의 적(敵)’들이 정책을 주무른 결과가 어떤가. 투기 바람이라는 악령이 되살아나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가.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결국 집 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떠안게 됐다.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시장에 대해 경건해져야 한다. 마음대로가 시장을 좌지우지하려다간 나라경제가 엉망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황재성기자 경제부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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