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홈]'똑순이 주부' 이희자씨의 내집마련 체험기-전략

  • 입력 2002년 2월 27일 17시 08분


아파트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이희자씨 가족.
아파트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는 이희자씨 가족.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유산을 물려받는 게 아니라면 월급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려면 먹을 것 줄이고 입을 것 아껴가며 한푼 두푼 모으는 일을 평균 7년쯤(2000년 기준) 해야 한다. 최근 들어선 이 기간이 더욱 길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분양가가 치솟고 집값도 큰 폭으로 오르고 있기 때문.

이런저런 얘기는 이제 갓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새내기들을 기죽이는 일이다. 하지만 6년차 주부 이희자씨(33)의 내 집 마련 과정을 들여다 보면 길이 보인다. 특히 전화나 편지보다는 인터넷이 더 익숙한 네티즌 세대에게 그는 훌륭한 지침서가 될 만하다.

#‘짠순이 저축 작전’ 더부살이

이씨는 92년 2월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통신(현 KT)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전산학을 전공한 게 인연이 됐다. 한 살 위인 남편(고동립)은 입사동기였다.

당시 그는 부동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었다. “8남매의 막내, 요즘으로 치면 다복(?)을 좀 넘어선 많은 식구 틈에서 자라면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겁니다.”

다만 알뜰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월급을 타면 눈 딱 감고 무조건 40%를 저축했다. 결과적으로 이게 내집마련에 큰 힘이 됐다. 누님과 여동생을 둔 남편은 이씨보다 더 알뜰했다. 남편 고씨의 한 달 저축액이 이씨보다 더 많았던 것.

입사 동기에서 친구로, 다시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96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 직전인 95년 언젠가는 필요하리란 생각에 각각 청약부금에 가입했다. “다달이 조금씩 부어 가는 거여서 부담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씨 부부는 결혼과 함께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시부모님 댁으로 들어가 살았다.

다행히 고부간의 갈등은 없었고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시부모님과 같이 사는 게 편했다. 생활비 부담을 줄이면서 두 사람 수입의 절반 이상을 고스란히 저축할 수 있었던 것. 매년 오르는 전세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한푼 두푼 모은 돈이 적잖은 목돈으로 바뀌어갔다.

# 청약의 설렘과 낙첨의 쓰라림

처음 부부가 알콩달콩 살기에는 13평짜리 신혼방은 적당했다. 그런데 96년 아들 지호를 낳고 살림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문제가 생겼다. “손님이 와도 제대로 앉을 곳이 없었어요. 아이 장난감도 처치 곤란이었고요.”

결혼 전부터 부어왔던 적금이 만기가 되면서 늘어가는 목돈도 활용하고 싶었다. 남편이 주식에 투자했다가 3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손해본 것도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래서 이씨는 99년부터 인터넷에서 부동산 관련 정보를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관련 주요 사이트는 모두 뒤졌다. 틈나는 대로 아파트 모델하우스도 둘러봤다. “비싼 건데 함부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살 위 언니가 전해주는 다양한 부동산 경험도 귀중한 정보가 됐다.

2000년 3월 원하던 곳이 눈에 띄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대우 그랜드월드 아파트였다. “청약한 아파트의 경쟁률은 43대 1로 치열했지만 꼭 내 집이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청약한 뒤 시댁식구들을 모델하우스로 초청, 자랑까지 했다. 몸이 불편해 동행하지 못한 시어머니를 위해 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낙첨이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같은 해 4월 다시 성산동 대림아파트에 청약했다. 그리 높지 않은 경쟁률이었지만 역시 보기 좋게 물먹었다. “연거푸 떨어지고 나니 당첨만 되어도 감지덕지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첨 그리고 그후

그리고 5월에 분양된 망원동 대림 e-편한 세상에 청약했다. 경쟁률 2대 1. 경쟁률은 높지 않았지만 이제 맘을 비우고 결과를 기다렸다. “다만 시댁에서 걸어서 5분 거리고 출퇴근하기도 편리해 당첨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덜컥 당첨이 됐다.

“그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게다가 당첨된 아파트가 한강이 바로 보이는 동. 최고 로열층에 해당하는 16층에 위치했다. 현재 이 아파트에 붙은 프리미엄만 3000만원 이상이다.

때마침 회사에서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며 목돈이 생겨 계약금을 치렀다. 그리고 만기가 돌아온 적금을 탈 때마다 건설회사에 중도금을 선납했다. “건설회사가 믿을 만했기 때문에 미리 내는 게 일거양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씨는 6차에 걸쳐 내는 중도금 중 5차분을 돈이 마련되는 대로 선납하면서 500만원 정도를 절약했다.

#에필로그

이씨와 남편, 아들 세 가족이 요즘 일요일마다 같이 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파트 건설 현장을 둘러보는 거다. “올 11월 입주 예정으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현장을 한바퀴 둘러보면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거든요.”

이씨는 앞으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40평형대 아파트를 청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다시 청약예금에 가입했다. 빈틈없이 준비해가는 이씨의 모습에서 그 꿈이 그다지 이루기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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