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이종훈/미국통 없는 외교 수뇌부

  • 입력 2002년 2월 17일 18시 50분


“미국통이 한 명도 없다.”

17일 이뤄진 외교통상부의 인사를 놓고 외교부 안팎에서 논란이 분분하게 일고 있다. 이날 새로 임명된 외교안보원장과 차관보직을 포함, 장차관 등 이른바 ‘G7’으로 불리는 외교부 고위간부 7명 가운데 미국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새삼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부터 한미동맹 관계의 강화를 거듭 강조해온 만큼 외교 사령탑에 미국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 이번 인사 결과에 상당수 외교부 직원들은 “예상하지 못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일본통마저도 전멸했기 때문이다. 최근 주일 대사까지 일본과 아무 연고도 없는 조세형(趙世衡) 민주당 상임고문이 ‘정치적 배려’ 케이스로 임명된 점을 감안하면 “미일 관계를 어떻게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자탄이 외교부 내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 느낌이다.

외교부 내에서는 이번 인사 결과를 놓고 처음부터 일부 요직에 ‘특정인 배제’와 ‘특정 학맥 배제’란 원칙을 정해놓고 판을 짰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다른 쪽에선 새 임명자들의 ‘업무역량’을 들어 이들을 변호하는 얘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외교를 지휘할 핵심부의 구성이 전체적인 외교방향이나 업무우선순위를 도외시한 채 짜여졌다면 이는 이유가 여하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정의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외교업무의 경우 오랜 인간관계를 통한 현지 인맥형성과 고도의 전문성이 기본조건으로 요구된다는 점은 두말 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외교부의 한 실무관계자는 “부시 대통령이 지난 달 연두교서를 발표하기 전 ‘북한을 비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언질을 받고도 백악관 내에 변변한 인맥조차 없어 허둥댔던 쓰라린 경험을 벌써 잊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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