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과 사람]日 삼림욕 발상지 아카자와<6>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03분


《도무지 겨울 하늘 같지 않은 코발트 빛 하늘에 감탄하며 순백의 눈으로 포장된 임도를 8㎞쯤 걸어 들어가며 만난 장엄한 편백(扁柏)의 숲. 일본 중부지역 나가노(長野)현 기소(木曾)군의 아카자와(赤澤) 휴양림은 아키다(秋田)현의 삼나무, 아오모리(靑林)현의 히바(나한백)나무와 함께 ‘일본의 3대 미림(美林)’으로 불린다. 특히 일본인들은 면적 700㏊의 아카자와 휴양림을 국보로 생각하고 있다. 국토의 67%가 산인 일본에서 인공림은 전체 산림의 절반을 약간 넘는다. 대부분 2차 세계대전 이후 조림돼 평균 나이는 35세 정도. 하지만 아카자와의 천연 편백림은 일본 나무 평균 나이 보다 무려 10배나 많아 300∼400세에 이른다.》

카자와 숲의 역사는 임진왜란 무렵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90년 일본전역을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信秀吉)는 당시 최상의 건축재로 꼽히던 이 지역 나무를 특별관리하기 시작했다. 뒤를 이어 최고권력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유산(留山)’이란 제도를 통해 이곳을 성역으로 만들었다. 이후 이 숲은 쇼군(將軍) 직할지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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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림욕(森林浴)’이란 한자 조어가 일본 학자에 의해 동양 사회에 처음 등장한 것도 이 숲에서다. 이곳에는 7개의 산책로가 나 있다.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건물 한 채, 계곡 물놀이를 한 뒤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한 량 짜리 삼림철도로도 숲을 누빌 수 있도록 했다. 사실 아카자와 휴양촌은 ‘너무 많은’ 방문객을 원하지 않는다. 주차장에서 삼림욕장이 있는 곳까지 2시간 가량 걷게 하는 것도 일종의 입장객 통제법이다.



400년 묵은 편백림이 빽빽한 일본 나가노현의 아카자와 휴양림. ‘삼림욕’이란 말을 낳기도 한 이 숲은 ‘보존’이란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꾸어가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숲에 서면 숲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시청후촉미(視廳嗅觸味) 등 오감(五感) 모두로 즐길 수 있는 공간임을 실감한다. 세상은 하늘과 백설과 나무로만 이뤄진 것 같다. 후두둑 나뭇가지에 쌓였던 눈이 떨어지는 소리, 나무향인 피톤치드가 코로 스미는 느낌…. 눈뭉치로 장난을 치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을 마셔 본다.

나무를 좋아하는 일본인은 지금도 대도시 고층빌딩을 빼면 건축재료로 대부분 나무를 쓴다. 연간 목재수요는 1억1000만㎥에 이르지만 목재자급율은 20%에 그쳐 대부분 수입한다. 목재는 석유, LNG(액화천연가스)에 이어 금액 기준으로 3대 수입품목이다.

아카자와 편백림도 보호정책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성의 개축시, 대화재 복구시, 교량건설 또는 돈을 만들기위해서 수시로 베어졌다. 그러다가 1791년부터 체계적 벌목 개념이 도입됐다.

이 일대 산을 50개 구역으로 나누고 매해 한 구역씩 돌아가며 어른 눈높이 지점의 지름이 약 25㎝ 이상 되는 나무(수령 100년 이상)을 베는 윤벌이 실시됐다. 현재는 엄격한 통제 아래 간벌(솎아베기)이 이뤄지고 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숲은 걷다가 잠시 쉬어가는 통나무집 곁에서 벌채를 한 흔적을 발견했다. 그 곁 안내판에는 몇 년전 통나무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잘랐다는 마을 이장의 글이 남겨져 있었다. 나무 한 그루까지도 꼼꼼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장.

령화와 도시화로 자꾸 비어만 가는 산촌인지라 아카자와휴양림이 들어선 아게마치 일대에는 최근 산촌진흥사업도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방치된 다락논을 활용해 도시민 숙박용 통나무집을 짓고 판매장도 만들어 체험관광을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이른바 ‘6차산업’을 키우는 것이 한국의 산림청에 해당하는 일본 임야청의 산촌개발 정책목표다. 6차산업이란 개념은 1차(농,임산물 생산)×2차(현지 가공)×3차(민박 서비스업, 농임산물 판매)산업의 복합기능을 갖춘다는 뜻에서 나왔다.

아카자와의 숲에서 20여명의 엽사를 만났다. 겨울철 일요일에 한해 허용되는 노루사냥을 위해 찾아온 50대 이상의 주민들이었다. 83세의 나이지만 펄펄 날 것 같은 사냥꾼 리더, 구로다 리쿠오씨(黑田 陸男)는 평생을 고향과 아카자와 숲을 지켜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35년간 애용해온 엽총을 들고 노루목을 지키고 선 구로다씨. 그의 모습은 세월이 오는 길목을 단단히 막고 서 있는 듯 보였다.

아카자와〓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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