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발로 머리로 걸으면 절로 행복 '걷기예찬'

  • 입력 2002년 1월 25일 17시 43분


◇ 걷기예찬/디비드 르 브르통 지음/276쪽 1만1000원 현대문학

제어장치 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도에 제동을 걸고 몸의 의미를 본래대로 되돌려 놓자고 말하는 책이다.

그동안 마라톤 열풍과 관련해 뛰기, 걷기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이 책의 특징은 걷기를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으로 철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초고속 광통신의 현대사회에서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대낮의 도심을 느긋하게 걷는 일은 할 일 없는 사람, 팔자좋은 사람의 전형이다. 저자(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사회학 교수)는 이를 ‘몸의 소외’라고 단언한다. 몸이 광통신사회의 보조수단, 즉 군더더기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발로 머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며 몸을 위로하고 있다.

‘길은 구체적인 걷기 체험을 통해, 때로는 그 혹독한 고통을 통해 근원적인 것의 중요함을 일깨움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고통스런 개인적 역사와 인연을 끊어버리고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의 길에서 멀리 떨어진 내면의 지름길을 열도록 해준다.’

현대 사회에서 걷기는 보통의 경우 일에 필요한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혹은 노동의 연장선이 됐다. 걷다 지쳐도 마땅히 앉을 곳이 없는 비인간적인 길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길을 나서는 행위는 ‘저항’ 내지는 ‘모험’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이제 걷기를 미친듯한 리듬을 타고 돌아가는 현대성에 대한 도전으로, 개인적 존재의 확인인 동시에 승리의 보증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걷기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읽기의 즐거움도 함께 주는 책이다. 원제 Eloge de la marche(2000년),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 옮김.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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