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경륭/DJ 거국내각 구성해야

  • 입력 2001년 12월 27일 17시 40분


독재 시대에 대학을 다닌 많은 사람들은 독재권력만 제거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독재정권이 퇴장하고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는 그러한 믿음이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역량있는 인재 발탁을▼

우리가 발견한 민주세력은 세계화와 정보화 등 세계사의 격변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국정관리 경험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조건 속에서 끊임없이 분출하는 노사·지역·이익갈등 등 갖가지 집단갈등을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무력한 세력에 불과했다.

또한 이 세력은 세계사의 변화 방향과 변화를 가져오는 역동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인식과 전망을 갖추지 못했다. 그리하여 국민들의 찬사 속에서 등장한 민주정권은 자신의 무비전과 무능력으로 인해 관료집단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채 갖가지 부정부패에 연루됨으로써 종국에는 외환 금융위기를 자초하고 말았다.

민주적 정통성을 이어받은 현 정부는 경제위기의 극복, 햇볕정책의 추진, 초고속통신망 시대의 개막 등 여러 측면에서 중요한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현 정부도 인사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덫’에 걸려 스스로 큰 고통을 당하고 있고, 또 국민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

현 정부에 의해 단행된 수많은 인사에 대해 그간 좁은 인재 풀에서 사람을 쓰다보니 자질과 도덕성 면에서 문제가 있는 인사들이 발탁된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되었다. 절체절명의 외환위기를 극복해온 김대중 정부로서는 이러한 비판이 참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고 있는 각종 게이트와 이러한 사건에 청와대와 국정원 고위간부들이 깊이 개입되었던 사실이 밝혀지고 있어, 김대중 정부로서도 인사상의 잘못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민주세력이 국가경영을 제대로 해왔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현 정부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된다. 국가경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대통령’ 외에 ‘준비된 정당’ ‘준비된 엘리트 그룹’이 존재해야 하나 실제로는 대통령 이외에 다른 요소들의 준비상태가 크게 미흡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민주주의하에서 국가경영의 효과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대체로 다음의 두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김대중 정부는 이제 민주당과의 정치적 관계를 정리했으므로, 앞으로는 특정 정당에 구애받음이 없이 거국적 국정운영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새해 접어들어 내각을 재구성할 때에는 국민통합과 미래개척이라는 관점에서 역량을 갖춘 인재를 폭넓게 발탁해 쓰는 새로운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둘째, 차기를 준비하는 정치세력들은 지금까지 민주세력들이 겪어온 정치적 취약성의 본질과 원인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마련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차기 대통령 후보, 정당, 사회 각 분야의 엘리트들은 모두 세계사의 흐름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고, 한국사회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는 미래비전과 전략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공정선거 관리 중점둬야▼

2001년에서 2002년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시점은 단순히 한 해가 가고 다른 해가 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년에는 분권화 개혁, 햇볕정책,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 등 여러 가지 쟁점을 두고 한국사회의 정치세력들이 격렬한 승부를 벌일 지방자치 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이 두 선거를 앞두고 현 정부는 거국적 정부운영을 통해 현실 문제의 해결과 공정한 선거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여야 각 정치세력들은 지난날의 과오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기 위해 도덕성과 역량을 갖춘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을 널리 규합하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년 선거에서는 미래지향적 리더 그룹의 형성 여부가 경쟁의 핵심 요소가 되기를 희망한다.

성경륭(한림대 교수·사회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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