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떡값'으로 끝내서는 안된다

  • 입력 2001년 12월 18일 19시 12분


할복(割腹)은 일본 막부(幕府)시대의 무사들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거나 패배의 수모를 모면하기 위해 택했던 비장한 방식의 죽음이다.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은 금품수수설이 터져 나오자 “단돈 몇 푼이라도 받았으면 할복하겠다”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항간의 의혹을 부인했다. 대통령을 보좌했던 현직 법무부 차관이 할복을 운위하며 하늘과 대통령에게 맹세코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제기된 의혹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지금 검찰 수사팀과 그 주변에서는 신 전 차관의 결백을 부인하는 분위기다. 진씨를 본 기억이 없다는 신 전 차관의 발언과 달리 진씨는 검찰에서 신 전 차관을 두 차례 만났다고 진술했다. 심부름을 시킨 최택곤씨로부터 돈을 건네 받았다는 심증을 갖게 된 여러 정황에 관해서도 털어놓은 모양이다.

신 전 차관이 진씨의 돈을 받은 혐의를 뒷받침하는 수사 내용이 전해지면서 검찰 주변에서는 신 전 차관이 최씨로부터 떡값 명목으로 여러 차례 나누어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최씨로부터 돈을 받기는 받았지만 진씨의 돈인 줄 몰랐고 명시적으로 대가성이 있는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검찰은 신 전 차관에 이어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도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하나 신 전 차관과 김 전 차장을 수사의 상한선으로 설정하거나 ‘떡값’ 수사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법리적으로 따져보면 떡값이냐 떡고물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골프 가방에 담긴 거액을 한목에 받았든, 소액을 여러 차례 나누어 받았든, 그 돈이 어디서 나온 돈이고 어떤 목적으로 건네지는 돈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신씨의 결백 주장은 근저가 무너지게 된다.

고위 공직자가 온갖 과격한 표현을 동원해 부인한 내용이 진실로 드러나게 되면 검찰 조직과 국민이 받을 허탈감은 이루 형언하기 어렵다. 검찰은 신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에 미칠 타격을 줄이기 위해 타협적 결론을 요구하는 안팎의 압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검찰조직을 살리기 위해서도 지금이야말로 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수사에 성역이 없이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지 않으면 더 큰 불똥이 또 어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돈의 성격을 모르고 받은 떡값이라는 결론으로 얼버무린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고 결국 특검의 재수사로 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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