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sky '잘 봐 네 자리에 누가 있는지'

  • 입력 2001년 11월 4일 17시 28분


sk 텔레텍의 sky 광고는 발칙하다. 배신당한 남자들이 보면 화를 벌컥 낼거고 여자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거다.

화면 가득 포옹하고 있는 남녀가 보인다. 남자는 여자의 품에 폭 안긴채 뒷모습을 보이고 있고 여자는 휴대폰을 들고 있다. 통통 두드리는 피아노음은 긴장을 풀어주며 편안하게 다가온다. 왜 안그렇겠는가? 연인과 함께하는 배경음악인데.

이목구비가 뚜렷한 여자모델은 단정한 단발머리에 슬리브리스 니트 차림. 긴 팔을 죽 뻗어 한참이나 휴대폰 화면을 느릿느릿 응시한다. 카메라가 달린 휴대폰화면을 바라보는 그 그윽한 눈길을 뭐라고 해야할까.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에 새삼스럽게 매혹되어 황홀해하는 나르시스트 같지 않은가.

남자는 여자와의 포옹을 음미하고 있겠지만 여자는 자신의 모습을 음미하고 있는 셈이다. 드디어 휴대폰화면에 잡힌 그녀의 모습.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아름답고 한편으론 오만해보이는 표정. 찰칵, 사진 찍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자 메시지가 함께 뜬다. '잘 봐, 네 자리에 누가 있는지'

오옷. 메시지를 보자 이런 생각이 불현 듯 든다. 그녀는 지금 옛애인에게 그 사진을 수신 중인게 아닐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과 살짝 엿보이는 남자의 뒷모습을 함께 동봉한채.

이 광고는 사람을 서서히 홀리게 한다. 우선 모델의 오만한 듯한 미모와 연출이 뛰어나다. 모델은 레베카 첸이라는 호주인. 대사 한마디 없이 상황을 꾸려가지만 집중의 밀도는 높고 정교하게 다가온다. sky만의 고급스럽고 세련된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이미지다.

하지만 sky는 부드러운 외관 속에 날카로운 파편을 마련해두고 있다. 감미로운 음악과 적당히 늘어진 분위기는 그저 무난하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가히 파격적이다. 변하지 않는 사랑타령이 아니라 사랑의 복수가 전해주는 차가운 향기를 전해주고 있으므로.

얼핏보면 여자가 자신의 미에 한껏 도취된 자뻑 '공주병' 환자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차가운 심장을 가진 '악녀'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아니라 옆자리를 새남자로 채운 그 도발적인 상황을 옛애인에게 타전하는 것이다. 잘 보라구, 내 옆자리는 이미 채워졌어. 예전에 네가 있던 자리였지.

2% 부족할때에서 보여주는 장즈이와 정우성의 목숨까지 내던지는 열병같은 청춘의 사랑, 맥심에서 고소영에게 첫눈에 반해 마음을 뺏겨버리는 한석규의 필이 강한 사랑. sky는 그런 운명적인 사랑을 에잇, 내동댕이친다.

그뿐인가. 한명을 떠나보내고 새롭게 찾아든 남자에게 탐닉하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깜직한 복수를 곁들인다. 은밀하지만 강력한 여인의 펀치. 달콤한 미소를 띄우며 슬그머니 날 선 칼을 건네는 식이다.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헌데 어인 일일까. 사랑의 금기를 깨는 당당한 파격이 즐겁다. 영원한 사랑을 기약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는 이 발칙한 즐거움. 배신과 복수 역시 인간의 은밀한 욕망이 아닌가. 광고장르가 줄 수 있는 짧지만 강렬한 카타르시스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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