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귀한 철학서 '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정말 귀한 책이 나왔다. 이런 철학 책을 나는 기다렸다. 엄청난 양의 독서에 바탕을 둔 해박한 지식, 그 지식을 철학의 내용과 연결시키는 탁월한 상상력과 통찰력 그리고 삶에 대한 혜안이 한 데 어울려 빚어진 걸작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내용과 구성에서 이렇게 참신한 철학 입문서를 나는 처음 접한다.

이 책은 어떤 점이 훌륭한가? 우선, 철학을 개념이나 지식이 아니라 문제 또는 주제를 중심으로 다룬다. 기존의 철학 텍스트가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한 이유는 철학 속에서 철학의 개념을 중심으로 설명하려 한 데 있다. 이와 달리 이 책은 철학 밖에서 문제를 구성하여 다시 철학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철학이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활동이게 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보다는 ‘철학적으로 생각한다’ 또는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답한다.

삶 속의 활동으로 철학을 파악하면서 저자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텍스트를 이야기 소재로 삼는다. 어린 왕자, 피노키오의 모험, 백설공주, 햄릿 등 우리에게 익숙한 책뿐 아니라 블레드 러너, 바이센테니얼 맨 등의 영화를 보조수단으로 동원한다. 서술내용에 걸맞는 삽화나, 본문 좌우 여백에 핵심 내용과 생각거리를 덧붙인 편집기법도 돋보인다. 독자는 적당히 긴장하면서도 충분히 재미있게 철학마을의 일원이 된다. 이 마을에서 철학이 건조하여 실증을 느끼거나 어려워서 도중하차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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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가 ‘잘 생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서술방식이 대화체로 되어 질문과 답변의 진행을 따라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생각의 호수에 빠져든다. 저자는 이렇게 빠져드는 ‘과정’을 중시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옳은 답 찾기보다 좋은 질문하기를 자연스레 익힌다. 대화체 구성이라는 특징과 별도로 저자는 내용에서도, 섣부른 답변을 피하면서 독자를 끊임없이 새로운 물음 앞에 마주 세운다. 철학함에서 중요한 것은 세계와 자신에 대해 새로운 물음을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점을 저자는 훌륭하게 보여준다.

이 힘을 배양하는 데에서 철학자들이 지금까지 어떤 물음을 던졌는지 저자는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무거운 철학을 가볍게 접근하면서도 가벼움을 경계하여 원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철학자들의 본뜻을 드러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각 장은 다양한 소제목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바닥에는 문제상황이 뚜렷이 흐르고 있고 장들끼리도 긴밀하게 유대를 맺어, 독자들이 철학의 역사를 총괄적으로 이해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 책은 학생과 일반인들에게는 철학에 눈을 뜨게 하고, 철학교육자에게는 철학교육의 모범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책을 단순히 학생을 위한 철학 입문서로 보기에는 아깝다. 무조건 일독을 권한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 제3, 4권이 기대된다.

유헌식(세종대 겸임교수·서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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