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여성 당수

  • 입력 2001년 10월 29일 22시 09분


엊그제 유럽 공산당의 맏형 격인 프랑스 공산당이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당수(서기장)로 맞았다. 프랑스가 이미 여성 총리까지 배출할 정도로 여성의 정계 진출이 활발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일사불란한 조직을 자랑하는 대표적 이념정당의 대표로 여성이 선출된 것은 놀랄 만한 뉴스다. 프랑스 공산당은 조르주 마르셰의 장기 집권에 이어 94년부터 턱수염을 시커멓게 기른 로베르 위가 이끌어온 ‘뻣뻣한’ 정당이었다. 당수가 된 마리조르주 뷔페는 현재 좌파연정에서 체육장관을 맡고 있는 전국적 인물이기는 하지만 프랑스 언론도 여성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81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스 공산당의 변신은 강요된 것이다. 공산당은 2차대전 당시 나치에 맞선 레지스탕스를 주도하면서 프랑스 정계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4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60년대와 70년대 각종 선거에서 20% 안팎의 표를 얻어 유럽 최고의 공산당으로서 힘을 과시했다. 81년에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과 손잡고 좌파정권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해 90년 이후에는 각종 선거에서 한번도 득표율 10%를 넘지 못했다. 프랑스 언론은 그래서인지 여성 당수 선출을 ‘재생을 위한 몸부림’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에서도 여성 정치인이 유력한 정당을 장악했다. 사민당이 28일 여성을 새 간사장으로 선출하고 정책조사회장을 맡고 있던 여성은 유임시킨 것. 이로써 사민당은 도이 다카코 당수를 정점으로 여성 3인이 당의 핵심 포스트를 모두 차지하는 ‘여인 천하’가 됐다. 현재 사민당이 집권과는 거리가 멀지만 일본 여성 유권자들은 사민당을 다시 한번 평가하게 됐다.

▷요즘 한국 여성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엽기적인 그녀’나 ‘조폭마누라’ 등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최근의 영화를 보면 젊은 층에서는 여성들이 ‘나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남성을 ‘주무르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 여성들의 그런 힘이 정치무대에 투입될 수는 없을까. 한국 정치판을 장악하고 있는 남성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으니 여성들이 프랑스나 일본처럼 정당의 대표가 되겠다고 나설 만도 하련만.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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