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후보 조기 가시화'가 급한가

10·25 재·보선에서 참패한 여권 내부에서 ‘대선후보 조기 가시화론’이 급부상하는 모양이다. 늦어도 내년 3, 4월까지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열어 차기 대선후보를 확정하고 그를 중심으로 5월 또는 6월의 지방선거를 치르자는 것이다. 후보를 빨리 뽑자고 주장하는 측은 지금 이대로 가서는 지방선거에서 이기기 힘들고, 지방선거에서 지면 내년 말의 대선도 어렵지 않으냐는 주장이다. 반면 이를 반대하는 측은 결과적으로 당내 특정 대선 예비주자에게 유리한 ‘불공정 경선’이 되지 않겠느냐고 비난한다.

우리는 민주당 내 대선 예비주자 간 정치적 이해가 걸린 논란에는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할 생각이 없다. 대선후보를 일찍 뽑고 말고는 민주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다만 재·보선 참패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대선후보 조기 가시화’부터 나오는 것은 여권핵심이 아직도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번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참패한 것은 민주당 대선후보가 ‘조기에 가시화되지 못해서’가 아니다. 민심이 현 정권에 등을 돌린 것은 거듭되는 실정과 잇따른 의혹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국정 쇄신을 바라는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급한 일은 총체적 국정 쇄신의 의지를 밝히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정국 수습의 특단책은 필요하지만 묘수가 없다”는 식의 미지근한 소리를 하면서 ‘대선후보 조기 가시화’나 들고 나와서는 분노한 민심을 수습할 수 없다.

어제 민주당 내 한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은 긴급회의를 갖고 비리 의혹 척결과 인사 개편 등 ‘민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근본적 국정 쇄신’을 주장했다. 당 최고위원들도 이미 획기적 국정 쇄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제는 민주당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말로만 하는 쇄신은 필요 없다. 구체적 행동으로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국정 쇄신 필요성에 대한 여권의 체감도는 여전히 청와대 따로, 당 따로인 듯 싶다. 당 대변인은 ‘연말 획기적 당정개편’을 발표하고 청와대 대변인은 그 말을 부인한다. 국민으로서는 정말 국정 쇄신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또다시 어물어물 시간을 끌겠다는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민심만 점점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