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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6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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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필자가 이수훈 교수의 저서 ‘세계체제의 인간학’(사회비평사)에 대해 썼던 서평의 한 대목이다. 이 교수가 이번에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역동과 좌절에 대한 탐색에 뛰어 들었다. 세계체제론의 틀을 원형으로 간직하면서 말이다.
많은 기대 속에서 출간된 이 책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현재’의 의미를 사회학적으로 판독해 낸 동아시아의 지형도이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경제의 역동성을 끌어온 동아시아, 세계화에 포섭되어 위기 국면에 허덕이는 동아시아, 승승장구하는 중국, 모든 테마가 한결같이 우리와 우리 주변의 삶을 둘러싼 진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다.
사실 동아시아의 꿈과 짐을 명쾌하게 정리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이 있어야 하고, 경험적 자료에 기초한 논증이 있어야 하고, 어디로 향할 것이라는 예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 교수의 세계체제론 연속 시리즈답게 옹골진 시각이 있다. 모든 논의는 비교역사적 방법과 풍부한 통계자료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체제, 아태지역, 중국, 한국 그리고 한반도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총 7장의 구성은 오랜 숙성을 거쳐 만들어진 치밀한 작품답게 완결성의 측면에서 돋보인다.
이 교수의 글에는 무언가 남다른 때로는 파격적인 새로움이 있다. 오늘날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국의 사례에 대한 주목은 탁월하다. 특히 중국의 발전 궤적을 해양국으로서의 중국이라는 ‘바다의 시각’에서 조망하는 것은 이채로운 접근이다. 한국사회의 발전 모델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토해내는 이 교수의 ‘반주변부적 가치에 입각한 반주변부적 삶의 공동체 구축’ 주장도 많은 이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생명력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는 데 버거워하는 이 시대의 지적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는 고뇌와 노력에 있다. 바로 이러한 생명력 때문에 향후 한반도 선택의 키워드로 ‘긴장’과 ‘실력’이라는 다소 정교하지 못한 대안의 모색이 있어도 큰 흠으로 지적되지 않는다. 어느 때보다 세계적인 혼돈과 갈등이 분출되고 있는 요즘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세계사의 발전에 있어 동아시아의 무게 실림이 어느 정도인지를 독해할 수 있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박길성(고려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