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국내 천일염 설 땅이 사라진다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8시 49분



국내 천일염 생산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산을 비롯한 값싼 수입 소금이 넘쳐나는 데다 식생활 변화로 소비량까지 줄어 천일염 생산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

97년 7월 소금 수입 자유화로 가격 경쟁력을 잃은 국내 천일염 생산업계는 내년 수입 소금에 부과되는 부담금까지 폐지되면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진다며 정부에 관련법 개정 등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수입산에 밀려난 천일염〓염 관리법에 따라 지금까지 수입 소금에는 t당 4만3690원의 관세가 부과됐으나 연말이면 이 부담금 징수 시효가 끝난다.

현재 30㎏짜리 천일염 소비자 가격은 8000원대로 6000원대인 중국산보다 2000원 정도 비싸지만 내년에 수입 부담금이 없어지면 중국산 소금의 포대당 가격이 3000원대로 낮아져 국내 천일염은 ‘퇴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수입 식용 소금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산은 수입자유화가 이뤄진 97년부터 지난해까지 34만6500t이 들어왔으며 올해에는 10일 현재 5만500t이 수입됐다.

이 때문에 국내 최대 규모인 전남 신안군 증도면 태평염전의 경우 중국산 소금이 시장을 잠식하면서 경영난이 심해지자 190㏊ 중 90㏊를 놀리고 있다.

태평염전 관계자는 “수입염의 염도가 국산 천일염 수준으로 낮춰지는 등 품질이 개선되면서 김치공장 등 대량 수요처가 값싼 수입염으로 돌아서고 있다”면서 “갈수록 짠 음식을 기피하는 식생활 변화 때문에 경영압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천일염 생산업자 김영석씨(67·전남 신안군 비금면)는 “한때 쌀 면화와 함께 삼백(三白)으로 유명하던 이 지역의 소금이 면화처럼 자취를 감추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황폐해지는 폐염전(閉鹽田)〓황폐해지고 있는 폐염전도 문제다. 대한염업조합에 따르면 국내 천일염 생산 면적은 모두 5700㏊로 10년 전 1만여㏊의 절반 정도가 줄었으나 많은 땅이 버려진 채 방치되고 있다.

염전산업이 급속하게 쇠퇴함에 따라 국내 천일염 생산업자들이 다른 산업으로 전업하도록 폐염전 지원비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는 염 관리법이 제정된 것이 97년 7월.

97년부터 2000년까지 폐염전 지원비로 176억원이 지급됐고 1577㏊의 염전이 사라졌다. 또 폐염전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마지막 해인 올해에도 250명의 생산업자가 1177㏊의 염전 폐업을 신청했다.

그러나 염전이 문을 닫더라도 가족 중심의 겸업 형태로 운영되는 섬 지역 염전의 다른 용도로의 전환 등은 막대한 시설투자가 필요해 쓸모 없는 땅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현재 서남해안 폐염전 가운데 어패류 양식장이나 논 밭 등으로 바뀐 면적은 864㏊에 불과하고 574㏊는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책은 없나〓17일 전국에서 서울에 모인 대한염업조합 소속 조합원 600여명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항의차 방문해 천일염 생산업자들의 생계 보장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수입 부담금 징수의 3년 연장 △폐염전 지원 기간의 3년 연장 및 지원비 인상 △검사제도 존속 등을 주요 내용으로 염관리법 개정과 함께 수입 소금의 국내산 둔갑 판매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요구했다.

대한염업조합 주영순(朱永順) 이사장은 “값싼 수입염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상황에서 최후의 방어선인 수입 부담금마저 없어지면 국내 염전업계는 무더기로 파산할 수밖에 없다”며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염관리법 개정 법률안을 빨리 통과시키고 정부도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법 개정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수입 부담금 징수 기간의 연장은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이 예상되고 폐염전 지원금 인상문제도 이미 지원금을 받은 업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어 곤란하다”는 처지를 밝혔다.

<신안〓정승호기자>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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