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유년의 추억… 경험… '나의 나무 아래서'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8시 42분


‘나의 나무’ 아래서/오에 겐자부로 지음/205쪽 8500원 까치

참숯 굽는 공장 옆에 살았던 적이 있다. 나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베어놓은 참나무 더미 위를 뛰어다니거나 얼굴에 숯 검댕을 묻히고 바닥에 흘려진 숯 조각을 훔치며 놀았다. 해질녘이면 우리들의 주머니에는 바스러진 숯 조각들이 한가득 들어 있곤 했다.

내 유년시절 나무의 모습은 푸르고 곧은 나무가 아니라 곰팡난 채 쓰러진 나무도막이거나 검디검은 숯이었다. 나는 겐자부로처럼 나이 먹은 미래의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나의 나무’를 상상해보지도 못했고, ‘책 읽는 작은 집’을 올릴 듬직한 단풍나무를 가진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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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자부로의 에세이를 읽는 동안, 어릴 적 내가 훔쳤던 쓸모 없는 숯조각들이 한데 모여 곧고 단단한 참나무가 되고, 이윽고 푸른 숲을 이루는 것을 보았다. 손만 대면 툭툭 떨어져나가는 나무껍질을 뜯어내면서 얼핏 스쳐갔던 어릴 적 어떤 의문들이 서서히 수맥을 찾아갔다.

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버스차장이라고 대답하면 왜 다들 비웃었는지, 나무는 왜 곧게 서서 자라는지, 베어져 죽은 나무의 향이 왜 더 진한지. 시원한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생의 막연한 의문들.

‘나의 나무 아래서’는 겐자부로가 아이였을 때의 추억과, 장애를 지닌 아이 한 명과 건강한 아이 두 명을 키운 경험으로 쓴 일종의 교육 에세이이다. 유년기와 소년기의 경험이 삶의 과정에서 어떻게 이어지는지, 특히 책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슬프고도 서정적인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의 아내 오에 유카리가 그린 삽화들도 생생하다.

누군가 나이 먹은 나에게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하고 물어온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나무처럼 그리고 지금의 너처럼 곧게 서서 살아왔단다’ 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겐자부로가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 ‘나의 나무’ 이야기를 들려준 할머니와, 각기 자신의 방법으로 삶의 ‘황무지’를 없애주었던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내 문학은 아들 덕분’ 이라고 말했던 장애 아들도 있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청소년이 읽어야할 책이 아니라 고향의 숲으로 돌아가기 전 우리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천운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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