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이용호씨 계열사 세무조작 조사' 3대 의혹

  • 입력 2001년 10월 18일 19시 00분


이용호씨 소유의 KEP전자가 존재하지도 않는 매출을 만들어 낸 것을 세무당국은 과연 밝혀내려는 의지가 있었을까. 가공매출을 꾸며 우량회사인 듯 속이고 투자자들에게 피해를 준 KEP전자는 세무조사의 칼날을 피해갔다.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 같은 의혹이 언론에 보도된 9월 이후 거듭 “국세청 조사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이뤄졌다”며 “한 점 의혹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세무당국의 조사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점을 정리한다.

▽왜 거짓해명했나〓마포세무서 조사원 정모씨는 99년10월 자료장사꾼 홍모씨를 조사한 뒤 조서를 홍씨에게 복사해줬다. 홍씨는 마포세무서에 출두한 그날 사건무마 자금조로 1000만원을 KEP전자에서 받고 “일의 원만한 처리를 위해”라는 자필 영수증을 써 준 인물. 9월 본보에서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자 조용근(趙鏞根)공보관 등 국세청 관계자 5명은 “피조사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복사해 줄 수 있다”며 “엉뚱한 것을 문제삼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 초기단계에 조사내용을 외부에 유출해선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료를 복사해 준 정씨에 대한 ‘형사처벌’ 문제가 본청에서 거론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은 문서유출 파문이 일자 직원들을 대상으로 문서유출 규정 등에 대해 재교육까지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줄짜리 통보·늑장처리〓마포세무서는 99년10월 KEP전자의 회계조작 혐의를 적발하고 관할 금천세무서에 통보했다. 그러나 통보내용은 ‘KEP전자가 자료상(資料商·세금계산서 장사꾼)으로 적발한 RGB시스템과 거래했으니 과세에 참고하라’는 딱 한 줄뿐이었다. KEP전자에 대한 은행입금 내용확인 및 3차례 방문조사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다.

마포세무서가 99년12월13일 금천세무서에 넘긴 한줄짜리 공문에는 ‘즉시처리’라는 도장이 찍혀있다. 그러나 금천세무서는 5개월이 지난 2000년 5월9일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금천세무서측은 “워낙 공문이 많아 3월에야 해당 부서에 접수됐고 4월 들어 세무조사하겠다고 KEP전자에 통보한 뒤 5월에 조사했으니 늑장처리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순진한 금천세무서?〓금천세무서의 조사결과는 ‘KEP전자는 컴퓨터부품을 용산전자상가 등에 팔았지만 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자 세금계산서 장사꾼에게 부득이 영수증을 샀다’는 것이었다.

이는 ‘직원 4명이 수개월만에 60억원어치 컴퓨터 부품을 떠돌이 장사꾼에게 현금만 받고 팔았다’는 KEP전자의 해명을 100% 수용한 것.

컴퓨터부품을 팔았다는 KEP전자의 유통사업부는 이용호씨 동서인 김모이사 밑에 사원 1명과 여직원 2명만 근무한 의문투성이 조직. KEP전자 이병호 이사는 “김 이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KEP전자에선 아무도 몰랐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금천세무서가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 5월9일로 이용호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되면서 중요 장부가 압수된 상태였다. 금천세무서는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을 새로 출력해 조사를 진행했고, 거래전표 등은 압수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핵심문서에는 결재서명도 없었고, 진위 여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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