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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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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제국주의의 잔혹상을 목격할 수 있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한 것은 일본 총리가 처음으로 과거사의 현장을 찾아갔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밝힌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은 전반적으로 볼 때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의 담화나 98년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내용을 그대로 확인한 수준에 머물렀다.
여기에다 “…서로 반성하면서 고통스러운 고난을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협조하자”는 말을 보태 오히려 상당한 오해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로 반성해야 한다’는 말이 일제에 의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우리도 자기들과 함께 반성해야 할 주체라는 뜻이라면 역사를 엄청나게 오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현안인 역사교과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꽁치어장 문제에 대한 논의도 양국 정상간에 오간 얘기를 보면 우리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양국의 역사학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역사공동연구기관을 설치하자” “전세계 누구라도 전몰자에 대한 참배가 가능하도록 하겠다” “꽁치어장 문제는 양국 외교 당국간에 진지한 협의가 이뤄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역사교과서 채택이나 자신의 신사 참배, 그리고 러시아와 남쿠릴열도의 꽁치어장을 ‘뒷거래’한 행동 자체에 대한 명시적인 반성과 해명이 없고 앞으로 어떻게 시정하겠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도 없다.
한일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더욱 강화하려면 먼저 서로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국의 이익만 챙기려 든다면 진정한 우호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고이즈미 총리가 어제 서울에 와서 좀 더 진지하게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현안에 대한 건설적인 의견을 제시했더라면 그동안 경색된 양국 관계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 기대를 채우지 못한 방문이어서 유감이라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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