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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4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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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어떤가〓15일 일산신도시 A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콘크리트 기둥들이 ‘철갑’을 두른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주 직후부터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해 급히 보강공사를 한 ‘상흔’이다.
주차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원래 보를 설치하지 않았지만 무게를 견디지 못해 기둥에 금이 가고, 천장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콘크리트 기둥 100여개 중 10여개에 보강공사를 한 것이다. 대부분 주차장 위에 조성된 단지내 공원을 떠받치는 기둥들이다. 최근에는 나머지 기둥들에서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한 단지의 경우 지난 연말부터 베란다와 붙은 거실 내벽으로 물이 스며들어 곰팡이가 피거나 금이 가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원인조사에 나선 주민들은 시공 당시 베란다쪽 세탁기 놓는 공간 주변에 방수공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을 찾아냈다.
주민들은 최근 서울지방법원에 건설공제조합을 상대로 7억4000여만원의 하자보수보증금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15일 판사의 현장검증을 마친 상태다.
일산 B아파트도 사정은 비슷하다. 집안 내부에 심각한 균열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돼 외벽의 균열은 걱정거리도 아닐 정도.
어느 집 할 것 없이 욕실의 타일이 떨어져 나가고 있으며 안방과 내벽 곳곳에서 물이 새고 있다. 주민들은 더 큰 하자를 의심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 벽에 난방재가 제대로 시공되지 않아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부딪쳐 건물 안쪽에 물방울이 맺히는 ‘결로(結露)’ 현상이 자주 발생, 1년 내내 곰팡이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민 김모씨(31·여)는 “욕실에 타일을 다시 붙여도 금세 떨어져 이젠 포기상태”라며 “건물 전체에 이상이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일산 C아파트의 지하주차장 천장도 틈새가 보이는 균열현상이 두드러졌고 녹슨 철근이 콘크리트 표면으로 삐여져 나온 흔적이 있다.
이 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이미 심각한 상태라고 판단되며 서둘러 보수하지 않으면 구조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원천적으로 시공에 문제가 있었는지, 바닷모래 등 자재사용에 문제가 있었는지 구체적인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안전 취약 지대가 된 지하주차장〓지하주차장은 보강공사가 한창이다. 지하주차장 위에 설치된 정자나 놀이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내려앉은 천장을 철제빔으로 다시 떠받치는 공사를 하고 있는 것. 지은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철근콘크리트 건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이는 지하주차장을 ‘무량판 구조(Flat Slab)’로 설계했기 때문. 무량판 구조는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대들보를 설치하지 않고 콘크리트만으로 시공하는 방법. 대들보가 없는 대신 슬래브를 두껍게 해 건물의 지지강도를 확보한다. 보를 설치하기 위한 50∼70cm의 공간을 따로 확보하지 않아도 되고 구조물을 지지하는 기둥 숫자도 줄일 수 있어 상대적으로 넓은 내부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게 장점.
그러나 이 구조는 일반적인 하중의 전달경로인 ‘슬래브→보→기둥→기초→지반’에서 보가 빠지기 때문에 정밀시공이 필요하다. 슬래브와 기둥이 콘크리트로 완벽하게 연결돼 있지 않으면 건물의 전체 구조가 취약해진다. 삼풍백화점도 이 공법으로 시공됐으나 건물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콘크리트를 촘촘하게 치지 않아 붕괴된 바 있다.
▽왜 이렇게 됐나〓짧은 시간에 많은 아파트를 한꺼번에 짓는 바람에 깔끔한 마무리 공사를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적된다. 택지조성에서 입주까지 2∼5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초스피드’로 진행돼 감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영국에서 조성중인 신도시 ‘밀튼 케인스’가 60년대에 계획을 세워 30여년 이상 건설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도권 신도시는 ‘번갯불에 콩 볶듯’ 진행됐다.
건설 당시 자재와 인력난도 ‘부실시공’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자재와 인력의 질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신도시 개발계획에 참여했던 건설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하루하루 공사 진척 상황을 체크할 정도로 공사를 재촉, 체계적인 관리를 하지 못했다”고 회고하며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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