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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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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연기를 단순한 ‘돌출 행동’으로 봐서는 안 된다. 북한은 분명한 협상 목표와 전략을 가지고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요리’하고 있다. 북한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무원칙과 무정견에서 벗어나 우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킬 수 있는 정책이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하겠다.
▼'강제와 설득' 배합전략 필요▼
북한은 당 정 군을 김정일 일개인에게 통합하고 있는, 최고 권력자에 의한 유일영도체제이다. 김정일의 절대성에 의해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북한 체제에 대한 보다 엄격한 분석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북한이 이산가족 교환방문을 갑자기 연기한 배경에는 북한의 치밀한 전략적 포석이 담겨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먼저 미국 테러사건으로 야기된 새로운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체제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테러사건 발생 한 달이 되는 11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반테러 국제연대를 강력히 천명하고 미사일방어(MD) 체제 구축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 북한으로서는 주시해야 할 국제정세의 변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북한의 이산가족 교환방문 연기는 예상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사전 예방조치로 볼 수 있다. 테러사건으로 북-미관계는 상당기간 경색될 것이 분명하다.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 방문으로 야기될 수 있는 체제 이완을 막고 테러사건 이후의 국제정세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아울러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각종 회담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우리의 대북정책과 협상전략의 새로운 점검을 요구하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국가이념으로 하고 있는 우리와 적대적 이념을 고수하고 있는 공산정권인 북한과의 협상은 일반적 상식을 가진 국가들과의 협상과는 달라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 진전에 대해 우리는 어떤 대응전략과 정책 전개가 필요한가. 대북정책은 민족의 사활이 걸려 있는 정책으로 결코 실험 대상이 될 수 없다. 냉철한 정세분석과 치밀한 대응이 필요할 뿐이다.
첫째, 북한에 대한 협상전략의 전면적 검토가 필요하다. 일방적인 대북 포용정책으로는 결코 북한을 우리가 의도하는 개방 개혁 체제로 유도할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히틀러의 동방계획에 따른 침략성에 기인하지만 철저히 대독 유화정책을 전개했던 당시 영국외교의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역사적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강제와 설득’의 이중 배합 전략의 개발이 요청된다.
둘째,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해야 한다. 상호주의는 결코 냉전사고가 아니다. 북한을 합리적인 협상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협상의 원칙이다. 대북 식량지원도 이산가족문제 같은 남북관계의 현안들과 연계해서 제공돼야 한다. 셋째, 이산가족 문제는 지금까지와 같은 방식을 계속하면 면회소 설치와 자유왕래는 요원한 만큼 인권문제와 연계해서 국제적인 연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상호주의 철저히 견지해야▼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대북 정책과 전략에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해 8월 한국의 언론사 사장단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문제는 내가 맘먹을 탓”이라고 호언하며 자신감을 보였는데 우리는 대북정책에 대한 여야간 대립이 한계상황을 넘어선 상태이다.
탈무드에 “허리를 굽혀야 진리를 줍는다”는 말이 있다. 정부는 좀 더 겸손한 자세로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대북정책과 협상전략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지금도 계속 흐르고 있다.
정경환(동의대교수·정치학
한국통일전략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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