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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0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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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로댐 클린턴 여사와는 달리 이 대통령 부인들은 공식적인 직함을 갖거나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고서도 남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케이티 마튼은 자신의 새 책 ‘은밀한 권력(Hidden Power):우리 근대사를 형성했던 대통령들의 결혼생활’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미 네 권의 책을 펴낸 경력이 있는 데다가 스스로도 유력 인사들과 결혼한 경험이 있는(그녀의 전 남편은 유명한 앵커인 피터 제닝스이고 현 남편은 전 유엔대사 리처드 홀브룩이다) 마튼은 수많은 인터뷰와 광범위한 자료조사를 통해 대통령 부부 11쌍의 결혼생활을 잘 보여주는 일화들과 날카로운 통찰력을 이 책에 담았다. 게다가 권력과 정열, 비밀과 섹스가 섞여 있는 이 책의 소재 또한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그 점이 바로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이미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이 너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역사의 즐거운 이야기들을 발견하게 된다. 점잔을 빼는 장로교인이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난초와 비단 양말로 에디스 갤트에게 구애했으며, 자신의 부인이 된 그녀에게 매일 보내던 사랑의 편지와 국가 중대사가 담긴 서류를 한데 섞어놓았다는 얘기, 그리고 외국의 밀사들과 얘기할 때 사용하는 비밀 암호를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는 얘기 등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에서는 마튼의 분석이 사실과 조금 어긋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튼은 재클린 케네디 여사가 1961년 파리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후 명실공히 남편의 파트너가 되었으며 그들 부부의 사이도 더 친밀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아주 빈약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한 마튼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부시 전 대통령이 도대체 언제 “널리 사랑받는 인물”이 되었단 말인가?
역사를 쓰는 사람이 띄엄띄엄 흩어진 점들을 연결해서 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기나 편지를 전혀 남기지 않았고, 베스 트루먼 여사는 자신의 편지들을 태워 버렸다. 그녀는 트루먼 대통령이 “역사적 기록을 생각하라”며 반대하자 “지금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이 책에서 언급한 대로 케네디 여사가 정말로 섹스에 관심이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여기서 인용된 케네디의 발언은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싶어하지 않는 여자에게 남자들이 흔히 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마튼은 책의 말미에서 현재의 백악관 주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유혹을 극복했어야 했다. 백악관이 부부관계와 여자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 마튼 자신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정치를 지루한 것으로 생각하고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혐오스럽게 생각했던 에디스 윌슨 여사가 남편이 병으로 쓰러져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백악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변신했던 얘기는 가장 좋은 예이다.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했던 엘레노어 루스벨트 여사가 말년에 병으로 쓰러진 남편의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윌슨 여사의 변신은 아주 충격적이다. 마튼은 “엘레노어는 그의 건강보다 그의 행정부를 더 걱정했던 것 같다”고 썼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루스벨트 여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다. “비판 능력이 전혀 없는 아내를 만났더라면 그는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유용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http://www.nytimes.com/2001/10/05/books/05BOOK.html)
<연국희기자>ykook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