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한적 영수회담' 으로 될까

  • 입력 2001년 10월 9일 18시 39분


온갖 권력형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물 건너 간 것처럼 보이던 여야 영수회담이 어제 오전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회담 의제가 미국의 대(對)테러전쟁 관련 사항 논의로 제한돼 국민이 기대하던 큰 틀의 영수회담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야 영수가 전세계 차원의 문제인 미국의 대테러전쟁에 대한 지지와 협력 의사를 확고히 하는 한편 전쟁에 따른 안보와 경제, 민생 대책에 초당적으로 힘을 모으기로 한 것은 시의 적절하다고 하겠다. 또한 이번 영수회담으로 반목과 대결로 치닫던 여야 관계가 일단 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제한된 의제의 영수회담으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국정을 추스르고 불안한 민심을 달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번 여야 영수회담에서 ‘이용호 게이트’와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 대북정책 등 국민적 관심이 쏠린 쟁점 현안들은 애초 의제에서 제외됐다. 미국의 대테러전쟁이란 긴급 사항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하겠으나, 국민 입장에서는 여야 영수가 무엇이 더욱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여야 영수가 빠른 시일내에 다시 만나야 한다.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원칙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영수회담의 무게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여야 대표 국회연설에서 드러났듯이 시국을 보는 여야의 시각은 판이하다. 이런 시각차는 여야 영수의 타협과 합의를 구하지 못하는 한 끝없는 정쟁(政爭)으로 이어지기 일쑤다. 여야 영수가 다시 만나야 할 이유다.

우선 ‘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 의혹을 철저히 밝힌다는 합의를 재천명해야 한다.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와 대북 정책 등 국론 분열에까지 이른 쟁점도 논의 대상에서 빠질 수 없다. 합의할 사항이 아니라고 의제에서조차 제외한다면 그런 회담은 하나마나다. 합의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그 점에서 특히 여권은 ‘우리만이 옳다’는 독선을 버려야 한다.

지금 민심은 제한된 의제의 영수회담으로 넘어갈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 대테러전쟁에 대한 대비도 해야겠지만 국정에 대한 국민 불신을 씻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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