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원/CEO역할 인식변화

입력 2001-10-07 18:39수정 2009-09-19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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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에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채권은행이 기업의 사장 사임건에 대해 “현재 사장을 오너가 경질할 경우 추가적인 자금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공개 경고하고 나선 것. 지금까지 한국의 재계와 금융계에서 쉽사리 찾지 못했던 새 양상이다.

최근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사장이 전격적으로 사임의사를 밝히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측은 “다시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측에 ‘무거운’ 과제를 던졌다. 산업은행의 이 같은 메시지는 채권자가 해당 기업의 전문경영인을 신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상선은 국제 해운업계에서 5위권에 드는 경쟁력 있는 업체였다. 2년 전부터 현대그룹 측이 펼친 금강산 관광사업에 끌려 들어가면서 이 회사는 20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았다. 지난해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땐 그룹측이 “현대상선이 보유중인 유가증권을 매각해 (건설을) 도와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술 더 떠 “현대상선 본사사옥과 무교동 건물까지 팔아 그룹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는 데 보태라”고 요청한 사실도 있었다.

현대상선의 김 사장은 이 같은 압력에 일정한 선을 그으면서 결과적으로 이를 물리쳐 그 행보가 주목되던 터였다. 채권은행측이 김 사장에게 신뢰감을 가진 것은 이 같은 ‘차별적인 경영’에 대한 지지라는 해석이다.

이와는 반대로 현대그룹 채권단은 지난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때엔 당시 사장과 부사장을 맡고 있던 인사들에게 “경영책임을 지고 물러나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채권단의 이 같은 움직임은 ‘시장의 뜻’이기도 하다. 시장의 질서에 따르는 기업은 주가가 오르고 은행자금도 쉽게 끌어쓸 수 있다. 반면 ‘보이지 않는 손’을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무리수를 두면 ‘시장의 힘’에 의해 응징 받을 수 있다.

금융권 고위 인사는 “지금까지 한국의 기업풍토에서 오너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최고경영자(CEO)가 몇 명이나 있었느냐”며 “이번 파문이 전문경영인의 역할에 대해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동원<경제부>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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