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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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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부진하던 하이닉스반도체의 해법찾기는 채권단의 공동관리 결정으로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은 그동안 엇갈린 이해관계, 추후 대두될 ‘책임론’ 등으로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개별 금융기관은 전체 채권단의 결정에 따르든지, 아니면 보유채권을 팔아 채권단에서 빠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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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회생이 확실한 해법’을 찾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채권단의 이기주의와 정부의 면피주의로 하이닉스는 환부를 근본적으로 도려내는 수술이 아니라 상처에 연고만 바르는 치료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빅딜’이라는 정치논리로 태어난 하이닉스가 여전히 정치논리에 휘둘리고 있는 것.
▽책임을 안지려는 은행장들〓은행장들은 “확실히 살 수 있다면 지원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대규모 부채탕감 △감자 △신규자금지원 같은 구체적인 지원안이 논의될 때면 말이 달라진다. 부채탕감은 전액 손실로 반영되며, 신규자금을 지원할 경우에도 최소한 50%의 충당금을 쌓아야 해 당장은 경영실적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하이닉스 채권의 30% 이상을 갖고 있는 한빛 외환 조흥 등 3개 은행은 정부와 경영개선계획(MOU)을 맺고 분기마다 경영성적을 평가받는다. 2번 이상 MOU를 달성하지 못하면 행장 문책은 물론 인력감축까지 해야 한다.
조흥은행의 한 관계자는 “MOU에 따라 연말 부실여신(고정이하 여신)의 비율을 4% 이하로 낮춰야 한다”며 “MOU가 하이닉스 해결에 발목을 잡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빛은행도 “연말 당기순이익이 5000억원은 돼야 한다”며 전전긍긍이다.
만약 하이닉스를 청산키로 결정, 법정관리에 넣는다 해도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법정관리시 금융권은 약 3조원의 추가부실을 떠안아야 한다.
한 시중은행장은 “사생간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은행장들이 자신의 임기 이후로 결단을 떠넘기는 대신 찔끔찔끔 지원하는 식으로 문제를 덮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의 면피주의〓은행권에선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은행과 맺은 MOU를 수정해줘야 하지만 쏟아질 비난 때문에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또 현대건설의 처리와는 달리 △미국의 통상압력 △내년 대선에 따른 표심(票心)이라는 상반된 변수 때문에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비난도 나온다.
정부는 하이닉스와 관련, 입장을 크게 바꿨다. 진념 부총리는 2월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씨티은행이 하이닉스의 신디케이트론을 주도했다”며 국내금융기관들의 소극적 자세를 질타했었다. 그러나 8월엔 “하이닉스의 운명은 외국인투자자와 채권단에 달렸으며 정부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용보증기금 등 정부 산하 기관마저 지원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제일은행 매각 후 공무원들은 감사원 국정조사 청문회까지 불려다니며 곤욕을 치렀다”며 “책임을 갖고 결정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하이닉스와 같은 기업을 어떻게 처리하든 욕을 먹기 마련”이라며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차기 정권으로 책임을 넘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업의 경쟁력은 망가지고 국가 경제는 피멍이 들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이훈·이나연기자>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