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日노벨상 작가의 개탄

  • 입력 2001년 8월 9일 18시 41분


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젊어서부터 촉망받는 작가였다. 일본 문학 특유의 부드러움, 섬세함과는 다른 거칠고 단조로운 문체로 주목받았다. 전후세대의 반항과 감성을 대변한다는 평도 들었다. 유명한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이래의 문재(文才)라고들 했다. ‘태양의 계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대학생 작가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등과 함께 신세대의 기수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오에가 걸어온 길은 미시마나 이시하라와 전혀 달랐다. 오히려 미시마처럼 황국만세를 부르며 자위대 옥상에서 자살하는 우익광기를 싫어했다. 오에는 1960년 사회당 당수가 우익청년에 의해 암살당한 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정치소년 죽다’라는 반(反)우익 소설을 써서 우익의 격한 공격을 받기도 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에 참여하고 70년대에는 한국의 저항시인 김지하 구명운동에도 나섰다. 참여 작가인 그에게 신좌파라는 이름도 곁들여졌다.

▷이시하라는 작가 타이틀을 밑천으로 정치에 나섰다. 자민당의원 대신을 거쳐 지금은 도쿄도지사. 우익 정객의 대표격이다. 오에가 이번에 그 이시하라를 비판했다. 왜곡된 중학 역사교과서를 장애학교에 공급하게 한 이시하라 지사가 ‘국제감각에 문제가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오에는 “‘일본이 최고다’라고만 가르치는 것은 특히 장애아에게 좋을 수 없다. 그 책에 반대가 많은 마당에…”라고 개탄한다. 오에에게는 뇌성마비 외아들이 있다.

▷오에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만든 왜곡교과서를 반대하는 쪽에 서있다. 일본에 불리한 난징(南京)학살, 군위안부 같은 것을 빼고 가르치는 ‘쇄국적(鎖國的)’ 자세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오에는 근년에 미국 대학에 교수로 머물면서 일본인의 역사인식에 관해 여러 나라 대학생들과 토론한 경험도 털어놓는다. “토론에 앞장서는 것은 일본의 피해자인 한국 대만 학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럽 중남미 학생들이었다.” 일본에 이런 작가, 국제감각의 ‘열린 지성’이 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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