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여자축구 만세!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39분


대한축구협회장인 정몽준(鄭夢準·무소속)의원은 내심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문제로 일본에 대한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때에 한국여자축구대표팀이 일본팀에 참패라도 당하면 힘들여 국제대회를 열어놓고도 욕이나 먹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공연한 걱정이었다. 일본과의 다 이긴 경기를 아쉽게도 1 대 1 무승부로 끝낸 한국은 북한 대신 참가한 남미의 강호 브라질을 3 대 1로 꺾더니 세계 정상급의 중국마저 같은 스코어로 물리치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비록 중국팀이 청소년대표 위주로 짜였다고는 하지만 한국여자축구가 중국을 꺾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한국이 9번 싸워 9번 모두 큰 점수 차로 패한 중국은 노르웨이, 미국과 함께 세계 3강에 꼽히는 여자축구의 강자 아닌가. 그런 중국을 이겼으니 차제에 월드컵 16강 진출에 애면글면 하는 남자축구 대신 여자축구로 눈을 돌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양궁 골프 농구 탁구 핸드볼 하키 등을 봐도 세계적으로 여자팀이 세니 축구 역시 ‘강한 한국여성’이 나서면 16강은 문제없고 곧 세계 8강, 4강에 오를 게 아니냐는 기대다. 그러나 우리 여자축구의 현실을 알고서는 그런 얘기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업팀이라고 INI스틸(옛 인천제철), 숭민원더스 단 두 팀밖에 없다. 그나마 재작년 12월 숭민이 생겨 두 팀이 된 것이다. 93년 이후 99년까지는 인천제철 한 팀뿐이었다.

▷대학에서 공을 차도 졸업하면 갈 데가 없다. 현재 대학선수는 9개 대학 160명. 이들 중에 많아야 10여명이 실업팀에 뽑힐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할 의욕도 신명도 나지 않을 게 뻔하다. 중국은 여자실업축구 갑(甲)리그만 16개팀이고, 일본도 L리그 12팀에 실업팀은 30개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우승으로 한국여자축구의 가능성은 입증됐다. 그러나 고작 두 개의 실업팀으로 가능성을 세계 정상으로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박수만 칠 게 아니라 우선 실업팀 한둘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