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명광고]스웨덴 청바지 '디젤 진'

  • 입력 2001년 7월 23일 18시 29분


스웨덴의 청바지 ‘디젤 진’ 광고가 97년 칸 광고제의 TV부문 그랑프리에 이어 최근 열린 2001년 인쇄부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양대 매체를 모두 석권한 것이다. 디젤 광고는 풍자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기성 가치관에 대한 저항을 표출해온 광대같은 존재다. 디젤은 브랜드의 물질적 특성보다는 브랜드의 ‘정신’을 커뮤니케이션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디젤은 아프리카, 인도, 심지어 북한 주민을 소재로 백인 중심의 세계 질서에 ‘딴지’를 놓는다. 이번 칸에서도 총 14편의 시리즈를 통해 그 개념을 더욱 확실히 했다.

오늘 소개하는 작품에는 7명의 아프리카 흑인이 등장한다. 트로피를 들고 있는 남자, 골프 클럽을 들고 있는 남자, 칵테일을 준비하는 여자 등 상류층 젊은이들이 뭔가 기분 좋은 일을 자축하고 있는 분위기.

이런 류의 그림은 흔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백인이 아닌 흑인남녀라는 점에서 약간 ‘충격적’이다. 광고의 왼쪽 아래를 보자. 유럽의 일간지를 패러디 한 듯한 ‘더 데일리 아프리칸’(The Daily African)이란 가상의 신문이 보인다. 사실 이 광고를 칸의 대상에까지 이끈 것은 이 신문기사다.

신문의 머릿기사는 이렇다. “아프리카 연합(AU)이 유럽에 재정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

아프리카 연합(AU)은 유럽을 하나로 묶고 있는 유럽 연합(EU)에 대한 비웃음이다. 이 신문기사는 핍박받는 아프리카가 주인의 위치에 올라 있고 동시에 유럽이 후진국으로 전락해 있는 가상의 상황을 설정했다. 누구나 슬며시 웃음을 짓는 대목. 신문기사는 사진의 ‘비꼬기’를 한층 돋보이게 한다.

칸 광고제는 전세계 크리에이터들의 향연,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유럽 크리에이터들의 잔치다. 이런 칸에서 유럽을 비웃고 조롱하는 광고에 손을 들어준 것은 주목을 끈다. 그러나 ‘제3세계’ 광고인의 입장에서 보면 유럽인들이 자기만족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 봐, 우리는 이런 광고에도 그랑프리를 선사한다구”라는 자기 위안적인 거만함이 넌지시 숨어 있기 때문이다.

네오 나치즘을 필두로 여전히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자행하고 있는 그들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라고 할까. 디젤 광고의 장난 섞인 풍자가 광고의 메시지가 아닌 오락거리로 전락한 느낌마저 든다. 저항의 정신은 희미해지고 제스처만 남은 것은 아닐까.

김 홍 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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