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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7월 23일 10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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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35) 교보증권 이코노미스트(경제분석가)는 연초부터 국내경제의 조기 회복론에 회의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과잉 설비투자에 시달리는 미국 IT업종이 내년 1/4분기에나 바닥권에서 탈출할 것인데 국내경제가 올해 2/4분기나 3/4분기에 바닥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그는 한국은행 씨티은행 삼성증권 등이 전망한 '3/4분기 바닥권'을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그의 입장을 지지하듯 국내경제가 올해안에 바닥권을 벗어나기 힘들다는 견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연초 씨티은행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V'자형 회복론은 지지세력을 잃은 지 오래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출신으로 LG투자신탁운용과 튜브투자자문에서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다. 올해초 교보증권으로 옮기면서 이코노미스트로 변신했다.
- 올해안에 국내경제가 회복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은 반도체 통신부품 PC 등 IT산업의 생산기지는 아니다. 한국 대만 등이 미국 IT기업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생산한 후 다시 미국에 수출한다. 그런 만큼 미국보다 한국의 IT경기가 먼저 회복될 수는 없다. 적어도 미국보다 3개월 정도 경기회복속도가 늦다.
재고증가율이나 신규설비투자규모 등을 볼 때 미국 IT산업은 내년 1/4분기 바닥권에 도달할 것이다. 국내IT산업은 내년도 2/4분기쯤 바닥권에 도달한다는 얘기다. 국내경제도 그때쯤 바닥권에서 벗어날 것이다.
- 최근 정부가 경기부양에 역점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국내경제가 올해안에 회복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은 없는가.
▲현시점에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반도체와 통신장비 등 IT산업의 수출증대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가령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 영업이익 감소를 콜금리 인하와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만회할 수 있겠는가.
현재 국내경제가 침체에 빠진 것은 IT산업의 수출 부진에서 기인한다. 그런 만큼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 실물경제 악화에도 불구하고 기업실사지수(BSI)와 소비자기대지수 등은 호전되고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BSI와 소비자기대지수가 개선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BSI를 산출하는 방법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가령 전경련이 산출하는 BSI는 먼저 매출액을 기준으로 600개 기업을 선정한다.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향후 경기전망 등을 조사한다.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동일하게 취급된다.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실물경제상황과 통계결과의 괴리가 발생한다.
또한 상반기 조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강하게 형성된 것도 BSI상승에 기여했다. 정부와 각종 경제예측기관이 '빠르면 2/4분기, 늦어도 3/4분기가 바닥권'이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대상 기업인들도 이같은 분위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조기회복론이 후퇴하자 BSI도 재차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경련이 실시한 7월 BSI가 6월보다 소폭 하락한 것이 단적인 예다. 소비자기대지수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는 올 상반기 사상 유례없는 흑자를 기록했다. 수출도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내수판매도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났다. 경기둔화속에서 자동차판매가 호조를 보인 것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자동차 애널리스트에게 수시로 질문했던 내용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현대차의 내수 판매증가는 소비자들의 구매력 증가보다는 '신차효과'와 '판매조건 호전'에 기인했다.
즉 금리인하로 자동차 할부판매조건이 좋아졌다. 무이자 판매기간도 늘고 할부이자도 과거보다 많이 낮아졌다. 또한 저금리로 은행에 저축하기보다는 차라리 자동차를 사자는 수요도 적잖게 늘었다. 여기다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서 신규 매수세력을 흡수했다고 본다.
국내경기가 3/4분기 바닥권에서 탈출할 것이란 사회분위기 속에서 '지금 자동차를 사도 무리는 안되겠다'라는 인식도 한 몫했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경기둔화속 자동차 판매호조'라는 현상을 낳았다. 하지만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하반기에 이같은 추세가 이어지기 힘들 것으로 본다.
- 구경제는 언제쯤 바닥권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는가.
▲자동차 화섬 조선 등은 이미 바닥권에 도달했다. 현재는 바닥권에서 탈출하는 국면이다. 이들 업종은 외환위기 이후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올해들어 급속히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업종의 경제성장률 기여도가 낮아 국내경제 전체의 바닥권 탈출은 내년 2/4분기이후에나 가능하다.
- 월드컵과 대통령선거 등이 경기회복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으로 보는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보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음식료 숙박업계 광고업계 등은 '월드컵 특수'가 예상된다. 하지만 월드컵이 국내 IT산업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기 때문에 소위 '월드컵 특수'가 경기회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됐다고 말할 수 있다.
- 경기 회복의 지연으로 국내증시도 당분간 횡보장세가 불가피한가.
▲국내증시가 상승추세로 전환하기 위해선 IT산업의 경기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누구나 인정한다. 6월초 국내증시가 630포인트대에 도달했던 것도 3/4분기 경기회복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가능했다.
하지만 그후 경기회복이 늦어질 것이란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최근 주가가 조정을 보이고 있다. 실물경제보다 주가가 먼저 움직이는 선행성을 감안할 때 올해말부터 국내증시가 상승추세로 전환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올 연말이전이라도 간헐적인 상승장은 연출될 것이다. 소위 '대세하락속 강세장(Bear market rally)'이 서너 차례 예상된다.
박영암 <동아닷컴 기자>pya84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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