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 기자의 반집&한집]조훈현-이창호 왕위전2국

  • 입력 2001년 7월 22일 19시 09분


◇가볍게 잽으로 던진 수가 중앙 흑세 무너뜨린 원인돼 기권패 이어 힘없이 돌던져

“이것도 백이 좀 좋은 거 아니야, 이 진행도 자신 없어.”

조훈현 9단은 국후 복기 과정에서 이창호 9단이 선보인 여러가지 진행에 대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면도 백 1 이후 다른 방식으로 둬서 끝내기까지 가면 과연 자신(흑)에게 승산이 있느냐는 얘기였다. 끝내기에 일가견이 있는 이 9단을 상대로 미세한 종반전은 장담하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20일 서울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35기 왕위전 도전 5번기 2국.

조 9단은 전남 해남에서 열릴 예정이던 1국에서 기권패했다. 후지쓰배, 농심배, 왕위전 최종 결승 등 평균 이틀걸러 한번씩 대국을 하던 그가 심한 몸살에 걸려 도전기 사상 처음으로 기권패한 것. 도전기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연기하는 법이 없다.

조 9단으로선 싸워보지도 못하고 내준 1국을 생각해서라도 2국을 꼭 이겨 1대 1 동률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장면도를 보자.

백은 도처에 실리가 짭짤한 반면 흑은 중앙세가 막강하다.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팽팽한 형세. 선수를 갖고 있는 백은 우선 허약한 좌변 말을 살려야 한다.

이 9단은 평범하게 백 1의 마늘모 행마를 선택했다. 이 수로 좌변이 죽는 일은 없다고 판단한 것. 이 때 흑 2로 치중한 것이 속된 말로 ‘긁는 수’였다. 일단 급소에 한방 치중해 사는 모양을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조 9단 특유의 ‘잽’.

하지만 이 수가 팽팽하던 국세를 일거에 무너뜨린 실착이었다.

백 3이 절묘한 붙임수. 흑은 뒤늦게 4로 막았지만 백 5의 빈삼각이 뼈아프다. 흑은 6, 8로 이어갈 수 밖에 없었지만 백 9로 놓여 백이 중앙 흑세로 터져서는 10집 이상 차이나는 바둑이 되고 말았다. 이 9단은 조 9단의 가벼운 잽을 패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후 흑은 백 대마를 집요하게 노렸지만 백이 침착한 대응으로 중앙 흑진을 헤집고 살자 돌을 던졌다. 146수만에 백 불계승.

참고도는 국후 두 대국자가 십여차례의 시도 끝에 만들어낸 그림. 조 9단은 이 진행도 자신없어 했지만 이 상황에서 흑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매우 아쉬운 표정으로 복기하던 조 9단의 흰머리와 입가의 주름에는 아직도 피곤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했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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