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기흥/美 그레이엄 추모 열풍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33분


18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관공서 등 정부 건물에 성조기가 반기(半旗)로 게양됐다. 전날 별세한 워싱턴포스트지의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앤서니 윌리엄스 시장이 조기를 게양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그레이엄 회장의 타계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워싱턴 포스트는 13개 면에 걸쳐 특집을 펼쳤고, 포스트의 경쟁지인 뉴욕타임스도 1면 기사 및 사설로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미 언론은 그레이엄 회장이 정부의 탄압을 뿌리치고 베트남 전쟁의 진실에 관한 국방부 기밀문건(펜타곤 페이퍼)을 뉴욕타임스와 함께 게재하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통해 미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회고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포함한 각계 저명인사들도 그레이엄 회장이 미국사회에 기여한 업적을 기리며 애도했다.

포스트는 그레이엄 회장은 기자들이 원하는 것(편집권 독립)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며 그것을 허용한 ‘이상적 보스’였다고 헌사를 바쳤다. 그런가 하면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포스트의 편집국장이었던 벤저민 브래들리는 “사주(캐서린 그레이엄)가 외압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워터게이트 사건의 활자화는 불가능했다”고 회고했다.

그레이엄 회장은 이런 찬사를 받아 마땅할 만큼 존경을 받아온 언론사 사주였다. 그것도 대를 이어 신문사를 경영해온 오너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아무도 그녀와 포스트를 이른바 ‘족벌언론’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녀가 기자들과 힘을 합쳐 존경받는 정론지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미 국회의원들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낼 정도로 한국 언론 상황이 어려운 시점에 그레이엄 회장에게 바쳐지는 헌사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미국인들은 신문의 소유형태 보다는 신문 자체의 품질에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한기흥 워싱턴 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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