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국내 신용평가사 '신용'흔들

  • 입력 2001년 7월 16일 18시 32분


국내 신용평가기관들이 매기는 기업 신용등급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올 들어 3개 신용평가기관의 등급 올리기가 눈에 띄게 늘어나면서 신용등급 자체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등급 인플레’는 투자자에게 공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채권발행금리를 떨어뜨려(발행가를 높여) 투자자에게 직접 금전적인 피해를 준다. 이 때문에 시장 전문가들은 신용평가 공정성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완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기 안 좋은데 기업 신용등급은 오른다〓증권사와 투신사의 채권 관계자들은 “지난해 이후 계속돼 온 경기둔화 추세에 변화가 없는데 기업의 신용등급이 계속 오르는 것은 평가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신용등급(회사채 기준)이 오른 기업은 98개지만 등급이 떨어진 기업은 29개에 불과하다. 신용평가 조정 현황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지표인 U/D 비율(상향조정 기업수/하향조정 기업수)은 3.4배나 된다.

반면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의 U/D비율은 지난해 0.45배로 상향조정보다 하향조정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사이의 긴밀한 공조경향을 감안할 때 국내 업체의 조정비율은 쉽게 납득하기 힘든 수준.

한 증권사 채권운용팀 관계자는 “채권시장에서 같은 기업 회사채의 유통수익률이 발행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경우가 생기면서 신용등급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신용등급 왜 오를까〓올 들어 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올린 가장 큰 이유는 재무구조 개선 때문. 한국신용평가 김선대 상무는 “정부의 부채비율 감축 정책과 기업들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 등으로 번 돈을 빚을 갚는데 쓰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며 “부채상환으로 기업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상당수 등급상향조정의 경우는 손님을 끌려는 평가기관과, 발행금리를 낮추려는 기업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등급간의 금리가 2%포인트 가량 차이 나기 때문에 100억원의 채권발행시 한 등급이 오르면 금리부담이 2억원 정도 줄게 된다. 평가사는 수수료를 챙기고 기업은 회사채 금리부담을 줄이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는 것.

공신력에 있어서 고만고만한 평가사들끼리 고객유치 경쟁만 치열하게 벌이다 보니 발행기업의 입김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삼성증권은 이와 관련, “외환위기 이후 평가사들의 등급부여 성향이 상당히 보수화됐으나 올 들어 보수성이 퇴색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채권연구원 노희진 박사는 “평가내용의 신뢰도에 따라 평가기관을 우량 또는 불량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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