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하늘아래 절반'의 권리

  • 입력 2001년 7월 16일 18시 27분


‘여성의 가슴을 그대로 묘사한 미켈란젤로의 그림도 포르노나 다름없다.’ 1934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로마의 시스틴 성당 그림을 복사해 팔지 못하도록 했다. 여성을 그저 남성이나 유혹하는 존재로 여기는 고루한 여성관이 명화조차도 음란물로 보는 데서 드러난다. ‘열린 신천지’ 미국에서 60여년 전에 벌어진 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슬람권이나 동양의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땠는지 더 말해 무엇하랴.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 역사도 짧다. 노동자나 흑인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이후의 일이다. 80여년 전 제1차 세계대전에 숱한 남자들이 동원돼 일자리를 여자들이 메웠다. 여성들도 산업혁명의 여파로 19세기부터 교육을 받고 박물관직원 사서 교사 건축기사 같은 직업을 갖게는 되었다. 그러다 전쟁과 더불어 여성들의 직장진출이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참정권도 도리 없이 부여된다. 1919년 영국이, 그 이듬해 미국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다.

▷일찍이 예수를 낳은 ‘여성’ 마리아에 대한 숭배전통이 있는 구미(歐美)에서도 그랬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중세에 이미 여성수도원이 생기고 여성 원장이 남성 수도사를 지배하기도 했다. 나아가 용맹의 상징인 기사들도 아이를 낳는 여성에게는 노예처럼 굽실거렸다. 그것이 서양문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그런데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일하고 인정받기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이다. 동양 중동에서 여성이 사람 대접을 받게 된 건 그보다도 한참 뒤였다.

▷인류 역사는 바로 여권(女權)신장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절반의 사람들이 눌리고 밟힌 채 수천 년을 살아왔다. 이제 역사의 수레바퀴는 남녀가 힘을 합쳐 더불어 돌리는 시대다.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보고서에 ‘한국의 여권 척도가 64개국 중 61위’로 꼴찌 수준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이나 고위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등 진출에서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묻혀 있는 여성의 잠재력을 국가의 동력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성 스스로의 노력, 남성들의 이해와 지지가 어우러져야 할 것 같다.

<김충식논설위원>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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