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정훈/금융당국의 '낙하산' 전횡

  • 입력 2001년 6월 27일 18시 25분


요즘 코스닥증시를 운영하는 ㈜코스닥증권시장 직원들의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지난주말 주총에서 창립멤버인 유시왕 전무가 물러나고 금융감독위원회 간부직에서 퇴임하는 P씨가 전무로 임명되면서 빚어진 일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퇴임 공무원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핵심인력을 쫓아내는 회사에서 무슨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겠느냐”며 동요하고 있다.

유 전무는 96년 코스닥시장의 탄생과 그 후의 발전에 공이 큰 인물이었으며 나스닥 등 외국증시와도 인적 유대가 폭넓은 전문가로 평가받아 왔다. 재정경제원 출신인 강정호 사장도 실무는 대부분 유 전무에게 일임해 왔었다. 결국 유 전무의 퇴임으로 당장의 업무공백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은 코스닥시장이 유 전무의 퇴사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또 다른 임원급 시장 전문가의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 공무원 뒤를 봐주기 위해 조직의 핵심인사를 내몰고 그로 인한 업무 공백을 다른 외부인사로 채우는 어처구니없는 촌극이 바로 코스닥시장 전체를 조율하는 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금감위가 정부투자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것도 아니다. ㈜코스닥증권시장은 한국증권업협회와 증권사 등이 대주주며 투자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공익기업으로 정부가 직접 투자한 기관은 아니다.

코스닥증권시장 강정호 사장은 주총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 전무가 유임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민간 금융기관 사장이 자기 회사의 임원인사에 대해 알지 못할 만큼 업계가 온통 금융당국의 ‘전횡’에 무방비로 휘둘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며칠 전에는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기 직전 3개월 동안 금감원 간부 11명이 무더기로 금융기관 고위간부로 진출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6월29일은 5개 시중은행이 퇴출되면서금융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지 만 3년이 되는 날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 묻고 싶다.

“지난 3년간 금감위가 주도했다는 금융개혁의 성과가 고작 ‘낯 두꺼운 낙하산 인사의 고질화’입니까?”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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