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포커스]前미대선후보 듀카키스씨 "한국인 친구 유이상씨 찾아요"

  • 입력 2001년 6월 24일 19시 01분


“6·25전쟁 직후 한국은 폐허 그 자체였어요. 하지만 기차 안에서 피곤에 지쳐 잠들다 무심코 창 밖 너머로 보았던 가을밤 풍경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88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마이클 듀카키스(68·사진)는 6·25직후인 1955년 12월 군사정전위원회 소속 유엔 사절단 통신병으로 경기 문산에서 16개월 동안 복무한 적이 있다. 51주년을 맞은 6·25전쟁이 올해도 남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잿더미의 한국은 ‘참 가난한 나라’였지만 막 대학을 졸업한 청년 듀카키스에게 세상을 알게 해 준 소중한 배움터이기도 했다.

“지구 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나 했을 정도로 아무런 지식 없이 한국에 도착했으니 기후나 환경 모두가 생소했고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지요.”

그런 그에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한국인 친구가 한사람 있다. 유엔군 근무 당시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던 ‘유이상’. 영어 이름으로는 ‘빌’이었던 친구.

빌씨는 수석 통역관으로 일했는데 한국에 대해 아무런 적응훈련이나 교육을 받지 못했던 미군 장병들에게 헌신적으로 한국말과 풍습을 가르쳤다고 한다.

“폐허 위에서 서로 돕고 사는 한국인들의 인정에도 반했지만 언제 내가 이 나라를 다시 밟을까 싶어 시간이 갈수록 한국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빌은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가 많았어요. 어느 일요일 오후 그의 서울 집에 초대받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서툰 한국어로 대화했던 기억도 납니다.”

1년4개월의 한국 체류 기간동안 한국의 후진적 인권상황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어수선한 분위기이기도 했지만 경찰이 시민을 때리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며 “심지어 동료 미군 장병들마저 물건만 없어지면 한국인을 의심하거나 때리는 것을 본 뒤 심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요즘도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관심이 많다.

듀카키스씨는 한국 복무 후 60년 하버드 법대 대학원을 졸업, 변호사로 잠시 활동했고 62년 정계에 입문해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거쳤다. 91년 정계를 떠났지만 그는 현재 미국 서부 캘리포나아대(UCLA)와 동부 노스이스턴대에서 정치학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대선 때문에 88 서울올림픽을 보지 못해 늘 아쉬웠다는 그는 올해 안에 부인과 함께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 기사가 나가면 빌을 찾을 수도 있겠군요. 그가 살아있다면 꼭 만나고 싶습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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