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洑(벌)

  • 입력 2001년 6월 3일 18시 23분


‘漢字는 살아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세계 수십 종의 문자 중 살아있는 문자는 漢字가 唯一(유일)하다. 현재 파악되고 있는 6만자 중 케케묵은 고서적 속에 한 두 번 비치고는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글자가 수두룩한 반면 지금도 계속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AD 100년, 즉 지금부터 1900년 전의 漢字 수는 9300여 字에 불과했다. 그것이 1700년대 淸나라 康熙字典(강희자전·4만7000자)을 거쳐 지금은 6만자를 헤아린다. 1900년 동안 무려 5만여자, 매년 평균 27자가 늘어난 셈이니 중국사람들이 漢字를 두고 ‘하루에 한 字씩 늘어난다’고 농담을 할 만도 하다.

中國이나 臺灣(대만), 그 어디의 法典(법전)에도 ‘漢字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은 없다. 즉 漢字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별을 발견한 사람이 이름을 붙이듯 자신이 만든 漢字는 자기가 규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臺灣의 경우, 귀한 아들을 얻었다고 기상천외한 이름자를 만들어 와서는 入籍(입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어 신문에 오르내린다.

그렇다고 公認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漢字는 누구나 만들 수 있되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문자는 아니다. 漢字가 만들어진 6가지 법칙, 즉 ‘六書’(상형, 지사 등)에 합치되어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漢字를 만들 수 있으므로 우리 조상들 역시 漢字를 많이 만들었다. 吏讀(이두)나 鄕札(향찰) 口訣(구결) 등이 그것이다. 다만 이들은 音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사이비 漢字’로 분류될 뿐이다.

그러나 현명하신 우리 조상들은 번듯한 漢字도 많이 만들어냈다. 所謂 ‘國字’가 그것으로 우리나라에서만 通用되고 있는 漢字들이다. 논을 뜻하는 ‘畓’(답), 집터 ‘대지’를 뜻하는 ‘岱’(대), 하천을 막아 물을 가두는 ‘洑’(보), 장롱을 뜻하는 ‘欌’(장), 시댁의 ‘媤’(시), 대들보 ‘Y’(보) 등은 宗主國(종주국)인 중국에 내 놔도 遜色(손색)없는 훌륭한 漢字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다. 시간이 나면 우리도 한 번 漢字를 만들어 보자.

오늘의 주제인 ‘X’ 역시 최상급 國字에 속한다. 굳이 六書로 분류한다면 形聲字(형성자)라 하겠다. 뜻은 ‘갯벌’이다. 갯벌을 메워 논을 만들던 시대는 지나갔다. 생태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이 밝혀진 까닭이다. 지금 그 X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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