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마운틴 듀>음치가수를 아시나요?

  • 입력 2001년 5월 28일 18시 31분


음료 <마운틴 듀> 광고에는 노래를 지지리도 못하는 음치가수 이재수가 등장한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정도다.

텅 빈 어두컴컴한 카페. 주위엔 아무도 없고 통기타를 둘러맨 남자 한명 뿐이다. 의자에 다리를 척 걸친 게 나름대로 폼나는 자세다. 나직하고 조용한 기타 인트로와 함께 'Time'을 내뱉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다'

듣다보면 어어, 어디서 분명히 들어본 노래 같은데 하면서 의심이 들 것이다. 맞다. 누구나 알 법한 '불후의 명곡'인 독일의 록그룹 스콜피언스의 'still loving you'다. 그 명곡이 여기선 불후의 졸곡으로 탈바꿈한다.

이어서 부르는 뒷 소절부터 서서히 두려울 정도의 마각을 드러낸다. 음정과 박자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멋대로 패턴이다. 으으, 목소리는 올라가지도 않고 갈라진다. 악보를 제대로 보기는 하는 것일까? 점점 이 남자가 뭐하는지 의아스럽기만 한데..

본인은 이런 시청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못 진지한 표정이다. 말하자면 음악계의 주성치다. 본인은 진지한데 시청자들은 웃겨서 뒹군다. 자체개발한 게 분명해 보이는 왕어설픈 바이브레이션은 거의 눈물이다. 이재수의 경우, 기교를 넣을수록 폭소가 터진다.

대단원을 내리는 마지막. 여기서의 감각이 발군이다. 내가 언제 망가졌냐는 듯 시치미 뚝 떼며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스틸 러빙 유'라며 애절하게 부른다. 당신을 아직까지 사랑해요, 그 마음을 담은 듯이.

이 광고 처음 보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누가 그렇지 않으랴. 되도 않는 노래를 한답시고 설치는데 가히 엽기를 넘어선다. 그 진지함과 진중한 자세. 이쯤 되면 단순히 엽기보다는 엽기아트가수로 표현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이 광고를 제대로 받아들이려면 모델인 이재수에 대해 이해하는게 제일 먼저다. 그는 인터넷방송 '배칠수의 음악텐트'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서서히 알려졌다. 배칠수씨와는 절친한 친구 사이. 이 방송은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심지어 음악 나가는 도중 광고방송까지 배칠수와 이재수가 직접 꾸민다.

엽기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건 화요일 코너 '그리움이 묻어나는 코너'에서다. 그가 예술적으로 망가뜨린 곡만도 부지기수다. 제시카의 'good bye' 스틸하트의 'she's gone' 뉴트롤즈의 'adagio' 서태지곡을 패러디한 '울트라면이야'. 여느 가수라면 쉽게 손대지 못할 명곡들만 골라서 전무후무한 리메이크곡을 탄생시킨다.

입소문과 mp3 이메일로 서서히 뜬 이재수. 그가 덤덤하게 주류로 진입 중이다. 최근에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나와 관객들을 뒤집어놓았고 심지어 KBS 9시 뉴스에까지 다뤄졌다. 그의 기괴하지만 유쾌한 감각에 매료된 김창환이 음반기획을 제의해 다음달에 음반까지 출시될 예정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그의 망가짐에 열광한다. 왜일까? 그의 실패가 지독하게 순수하기 때문이다. 처절하고 패기어린 실패는 오히려 후련하다. 자신이 소원하는 이상적인 노래실력과, 자신이 실제 부를 수 있는 현실의 노래실력 사이. 그 간극에서 알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시청자들은 변덕스러운 입맛의 탐식가들이다. '엽기'와 '패러디'는 짐짓 가벼움을 가장하지만 가치 전복적인 정신이다. 하지만 요즘에 코믹적으로 구사하는 엽기와 패러디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이다. 새로운 맛을 찾는 대중에게 던지는 충격요법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재수에 대한 애정도 그저 한때의 호기심일수 있다.

그가 경계해야할 것은 두가지다. 이리저리 불려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혹여 음정이 맞을까 하는 것, 그리고 대중의 냉혹함을 알고 스스로를 아끼며 활동할 것.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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