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강수로 나가다 카운터에 당한 이세돌

  • 입력 2001년 5월 23일 19시 04분


◇역전패한 3국 악몽 탓에 너무 서두르다 찬스 놓쳐◇

“와, 이세돌 3단, 강수 연발인데요. 하지만….”

검토실에는 감탄의 목소리와 함께 우려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21일 열린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최종국. 이 3단이 2연승을 거둘 때만 해도 이창호 9단의 슬럼프를 안타까워하는 얘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이 3단이 2연패를 당하자 검토실은 이 3단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이 3단이) 조금 쉽게 둬도 형세가 괜찮은 것 같은데….”

누군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초조한가봐. 이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장면 1도. 흑을 든 이 3단이 미세하나마 유리하다. 좌상귀 패를 둘러싼 흥정의 결과가 이 판의 승부를 좌우할 것 같은 흐름이었다.

백 1로 팻감을 썼을 때, 강력하게 흑 2로 좌상귀를 끊어 끝장을 보자고 나선다.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이 3단이 먼저 칼을 빼든 것.

그러나 한순간 인내하지 못한 이 수는 패착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했다. 무조건 패를 받아야 했다. 흑으로선 패를 이용해 다른 곳에 두 번 두면 충분했다.

흑 4의 절대 팻감으로 좌상귀 패를 이기긴 했지만 중앙 두 점이 잡힌 데다 속수처럼 보이는 백 11, 13이 좋은 수순이어서 좌하귀 일대에 거대한 백 세력을 건설하게 돼 승부는 일시에 기울고 말았다.

“결국 고비를 넘기지 못하나.”

한 켠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장면 2도. 흑 1로 깊숙이 뛰어든 한 수에 이어 3, 5로 처절하게 버틴 것이 이 3단 특유의 괴력. 백 6으로 모자를 씌우자 살아나갈 길이 없어 보였지만 흑 11이 좋은 수여서 ‘가∼다’의 수순으로 삶이 보장됐다.

이 3단은 이런 괴력으로 1, 2국을 이겼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수법을 연발하며 수를 내는 힘. 이번 결승전에서 이 3단이 보여준 강점이었다.

‘혹시 역전 아닐까’하는 순간에 흑 17이 놓인다.

검토실 기사들이 ‘허허’하고 웃는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백의 약점을 찌르고 나선 것.

그러나 이게 마지막 찬스를 놓친 수였다. 그냥 좌하귀에서 살아야 했다. 이어 백이 ‘라’로 둘 때 ‘마’로 중앙을 삭감하면 흑이 조금 불리하지만 해볼 만한 형세였다는 것.

나중에 백 ◎은 잡았지만 좌하귀 흑이 모조리 죽어 도저히 덤을 낼 수 없게 됐다.

“3국에서 종반에 역전패당한 게 컸어요. 다 이겼다고 생각해 너무 쉽게 물러서다가 당한 거죠. 그 기억이 이 3단을 괴롭힌 것 같아요. 4, 5국에선 빨리 승부를 내자고 강수로 나가다가 이 9단의 카운터 블로에 당한 거죠. 하지만 이 3단에겐 미래가 있어요. 이 9단을 만나서도 주눅들지 않는 승부기질, 그는 대성할 거예요.” 검토실의 한 기사의 말이었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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