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최경주 “지난해 겪은 고통 말도 못해요”

  • 입력 2001년 5월 21일 18시 26분


최경주 프로(왼쪽)가 골프를 배우고 싶다는 황영조 감독에게 퍼팅요령을 지도하고 있다.[포천=김동주기자]
최경주 프로(왼쪽)가 골프를 배우고 싶다는 황영조 감독에게 퍼팅요령을 지도하고 있다.[포천=김동주기자]
미국PGA투어에는 ‘두번째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하지 못하면 평생 미국PGA투어 무대를 밟지 못한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한다.

한국 남자골퍼로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꿈의 무대’로 불리는 미국PGA 정규투어에 진출했던 ‘탱크’ 최경주(슈페리어)는 그해 상금랭킹 134위에 그치며 풀시드 획득에 실패하는 좌절을 맛봤다.하지만 그는 다시 2001시즌 퀄리파잉 스쿨에 두 번째 도전해 6라운드의 피말리는 ‘시험’을 통과하는 강한 집념을 보여줬다. 그리고는 올시즌 초반 ‘톱5’에 두 번이나 진입하며 내년 시즌 풀시드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경주의 미국PGA 무대 도전은 한마디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 특유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의 오늘이 있기까지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인터뷰 동영상보기▼
- 역도선수에서 골퍼가 되기까지/별명에 관하여/자식이야기
- 미국생활의 좌절과 극복/최경주가 본 타이거 우즈
- 결혼하기까지/골프를 잘 치는 비결

▲“지난해 겪은 고통 말도 못해요”▲

황영조:반갑습니다.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바쁜 귀국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경주:별 말씀을…. 저도 영광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골프팬들이 모자에 사인을 해달라며 몰려들었다. 하지만 팬들의 손에 펜은 없었다. 최프로는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사인펜을 꺼내 일필휘지로 사인을 했다. 대회기간도 아닌데 항상 팬사인용 펜을 가지고 다니는 철저한 프로자세가 인상적이었다)

황:(자신의 매니저에게 웃으며) 당신도 저런 사인펜좀 준비해 갖고 다녀요. 나도 팬들에게 사인해줄 경우가 있는데 볼펜으로 하니까 폼이 안나잖아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 황감독은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황:시골출신인데 어떻게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때 역도하다 ‘전향’▽

최:저는 중학교때 역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실력이 늘지 않더군요. 매달 기록을 조금씩이라도 향상시켜야 하는데 잘 안됐고 흥미도 잃게 됐어요. 그러다가 주위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황:저도 중학교때 사이클선수였다가 고등학교때 육상을 시작했는데 비슷하군요. 그런데 역도를 했던 것이 골프선수로 변신하는데 도움이 됐나요?

최:물론 역도를 할때 다져진 기초체력과 순발력 유연성은 큰 도움이 됐지요. 하지만 ‘역도근육’을 ‘골프근육’으로 바꾸는데 3년이나 걸렸습니다. 만약 당시 도대표가 될 정도로 역도에 소질을 보였다면 골프선수로 변신하기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다행이지요.

황:최프로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치는 것 같은데 엄청난 장타가 나오는데 비결은 무엇입니까?

최:학창시절 온 마을 남자들이 동원돼 도랑공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른들은 지친 기색없이 몇시간이나 곡괭이질을 하시더군요. 저와 친구들은 10분만에 지쳐버렸지요. 비슷한 원리인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골프스윙중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요.

황:최근 미국에서 ‘탱크’로 불린다는데 공교롭게도 저도 선수시절 닉네임이 ‘탱크’였습니다. 그 별명이 마음에 드는지요?

▽‘타이슨’보다 ‘탱크’로 불러주길▽

최: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별명중 ‘필드의 타이슨’은 남의 이름이 들어 있고 ‘호크아이’는 특정 골프채의 이름이라 그렇게 불러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황:호적에는 1970년생으로 돼 있어 저와 동갑(만31세)인줄 알았는데 실제 나이는 더 많다죠?.

최:예, 실제로는 1968년생입니다. 시골에서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농담조로) 지금은 덩치가 좋지만 태어났을 때는 시원찮아서 부모님이 2년정도 지켜보셨나 보죠.(웃음)

황:미국 진출 초기에 고생이 많았다는데….

최:우선 말이 안통해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지요. 일상생활이나 골프영어는 그런대로 할수 있었지만 전문적인 영어가 필요할 때 답답했지요. 예를 들어 집에 무엇을 고칠 게 있어 전화로 엔지니어를 부를 때 말이 통하지 않아 짜증까지 나더군요.

황:2년째 미국에서 활동하시는데 영어실력은 어느정도인가요.

최:우리나라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 정도죠. 지난해에는 외국선수와 10분이상 대화하기가 버거웠는데 요즘은 30분 정도는 버틸수 있지요.

(하지만 최프로의 이 대답은 겸손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최프로는 황감독과의 인터뷰 직후 APGA투어에서 SK텔레콤오픈 취재차 온 기자와 능숙한 영어로 장시간 인터뷰했다.)

황:일본선수들은 통역요원과 매니저 등 수행원이 한 선수당 4명이 넘는다는데 정말입니까?.

최:그렇더군요. 지난해에는 모든 것을 수행원들이 해결해 주는 마루야마 시게키가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선수들이 불쌍하게 생각됩니다. 그들은 통역요원이나 매니저가 곁에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고나 할까요. 요즘 마루야마는 나와 만나면 처음에는 영어로 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일본어로 합니다. 제가 일본어는 조금 하니까요.

황:미국진출 첫 해인 지난해 얘기 좀 해주세요.

최:연속해서 예선탈락할때는 ‘내 골프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구나’‘어떻게해야 살아남을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할 정도로 모든 것이 힘들었습니다. 어떤 대회에서는 연습할 의욕도 없어 연습레인지에서 외국선수들이 볼 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한 적도 있죠.

황:타이거 우즈가 정말 그렇게 잘 칩니까?.

최:한마디로 공을 가지고 논다고 할까요. 타이거가 컨디션이 나쁘지 않고 부상만 없다면 큰 대회에서 그를 꺾을 선수는 당분간 없을 겁니다.

황:타이거 우즈와는 어느정도 아는 사이인가요.

최:올 AT&T대회로 기억합니다. 타이거와 절친한 마크 오메라가 함께 퍼팅연습을 하고 있더군요. 제가 오메라와는 약간의 안면이 있어 오메라에게 먼저 접근했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타이거와 인사를 나누게 됐습니다. 이제는 같은 대회에서 만나면 서로 아는척하며 안부도 묻는 사이가 됐습니다.

황:최프로의 현재가 있기까지는 부인(김현정씨)의 내조가 절대적이라고 들었는데….

▽美진출은 아내 내조 덕분▽

최:미국진출을 결심하는데 결정적으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사람이 바로 집사람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집사람이 영어로된 서류는 처리가 가능했고 말은 시간이 지나면 느는 것이라 결단을 내렸죠.

황:처가집에서 처음에는 결혼에 반대했다던데….

최:가진 것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했으니 그럴수 밖에요. 그래서 ‘반드시 우승해야겠다’고 다짐했지요. 프로데뷔 2년만인 95년 팬텀오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뒤 처가댁에 찾아가 허락을 받아내 그 해 12월 결혼했습니다.

황:이번 SK텔레콤오픈에서는 예선탈락했는데….

최:뭉친 등근육도 풀려 컨디션은 괜찮았지만 그린 적응이 안됐습니다. 팬과 주최사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해 무척 아쉽습니다.

황: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시간이 나면 골프를 할 생각입니다.

최:스포츠에 나중은 없습니다. 특히 골프는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지요. 한번 두번 골프제의를 거절하다보면 결국 나중에는 주위사람들이 끼워주지 않습니다. 후회하지 말고 빨리 시작하세요.

<정리〓안영식기자>ysah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