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병종/다 바꾸라고?

  • 입력 2001년 5월 18일 18시 24분


지나고 보면 유행가는 가장 정직한 한 시대의 언어가 되고 캐리커처가 된다. 그러기에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랫말들을 뒤집어 보면 그 시대의 풍경과 표정이 그대로 떠오르곤 한다. ‘목포의 눈물’과 ‘감격시대’에는 각각 일제와 해방공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얼마 전 유행했던 노래 중에 ‘바꿔’라는 노래가 있었다. 사뭇 명령조로 바꾸되 다 바꾸라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개혁시대의 구호 같은 노래였다. 예쁘장한 여가수가 부르는 그 노래를 TV를 통해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당시는 선거의 계절이었는데 이 노래의 여파가 상당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선거가 끝나면서 사라져 이제 또 하나의 흘러간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요새 뜬금없이 이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정말 바뀌어도 많이 바뀌는구나, 하는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다 바꾸라고 숨가쁘게 다그치던 노래가 생각나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 몇 년 사이 우리는 개혁 신드롬과 변화증후군 속에 둥둥 떠다녔다. 자고 일어나면 장관이 바뀌고 정책이 바뀌어 눈이 핑핑 돌 정도였다. 바꾸는 것은 신나는 일이고 개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짧은 시간에 모조리 다 바꾸어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더구나 위험한 것은 이 강박적 사고에 떠밀려 바꿔서는 안될 것까지도 덩달아 바꿔버리는 일이다. 가장 사려 깊게 접근해야 될 교육이나 입시정책 같은 것에서도 이런 강박적 증후는 드러난다. 이를테면 그렇게 좋은 제도라고 일컬어지던 ‘대입 논술’ 같은 것이 간단하게 사라져 버린 것도 그것이다. 이런 식으로 바꿔가다 보면 개혁과 변화의 실체는 실종돼 버린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모든 변화의 열풍 속에서도 가장 먼저 변하고 개혁되어야 할 주체들은 요지부동으로 끄떡없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중 하나가 정치다. 특별히 정치권을 향해 바꾸라고, 다 바꾸라고 그렇게도 외쳐대던 ‘바꿔’라는 노래는 그래서 지금 지나고 보면 무참히 유린당한 느낌마저 든다. 좋은 유행가는 시대가 가도 다시 불리는 것이지만, 이래저래 ‘바꿔’는 다시 부르기에 쑥스럽고 씁쓰름한 노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김병종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화가) kimby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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